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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아시아 1위지만 ‘42위’로 한 계단 하락
2020 세계언론자유지수 리뷰

등록일 : 2020-05-28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하는 자유는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전 세계 언론은 그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오늘도 발로 뛰고 듣고 기록한다. 과연 전 세계 언론의 자유는 지금 어느 정도일까. 2020 세계언론자유지수를 기반으로 세계는 물론 국내의 언론 자유 상황을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지난 4월 21일 ‘2020 세계언론자유지수’가 전 세계에 동시 발표됐다. 국제언론감시단체인 국경없는기자회(Reporters Sans Frontières)가 180개국을 대상으로 각국의 언론 자유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로 매년 이맘때면 공개한다.  

 

국내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한국이 아시아 1위를 지켰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일은 아니었다. 아시아의 언론 자유 상황이 지난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후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세계 언론도 민주주의 퇴보 추세와 함께 언론의 자유를 어느 때보다 거세게 위협받고 있다.

 

크리스토프 들루아르(Christophe Deloire) 국경없는기자회 사무총장은 “저널리즘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위기들 때문에 이제 결정적 10년에 들어섰다”고 총평하며 지정학적, 기술적, 민주적, 경제적 위기 등과 함께 낮은 언론 신뢰도를 위협 요소로 꼽았다.

 

“한국에서 기자 괴롭힘이 심해지는 것을 우려한다”


한국은 지난해 41위에서 한 단계 떨어진 42위를 기록했다. [그림 1] 다수 보도가 ‘아시아 1위’를 헤드라인으로 뽑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이 있다. 어쨌든 순위가 하락했다는 게 하나이고, 아시아 전체 자유도가 크게 악화한 상황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불편한 진실이 두 번째다.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독재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한국은 민주화의 빠른 진전과 함께 노무현 정부 3년차던 2006년에 세계언론자유지수 순위가 31위까지 올랐다. 이때도 한국은 아시아에서 언론 자유를 가장 많이 누리는 국가였다. 앞뒤 성적도 2005년 34위, 2007년 39위로 나쁘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뒤 청와대 춘추관을 개방해 출입기자가 아니더라도 브리핑을 들을 수 있도록 기자실 문턱을 낮췄다. 국회와 정부부처 기자실도 차례로 개방됐다. 

 

2005년에는 여론 독과점을 막고 언론사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 보장에 관한 법률’(신문법)을 개정, 시행했다. 인터넷신문에 언론 지위와 권한을 부여한 것도 이 법이다(이후 인터넷 언론이 무분별하게 늘어나게 한 책임도 있다). 이어 기자실 통폐합이라는 극약 처방은 강한 반대에 부딪혀 끝내 시행되지 못했지만 언론 자유를 지키면서 그 책임도 강조하는 참여정부의 방향은 시종 일관됐다. 

 


 

[그림 1] 역대 한국 언론자유지수 순위 <출처 - 필자 제공>

 

거기까지였다. 이어 취임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단계부터 신문법을 폐지하고 신문방송 겸영 규제를 완화하는 대체 입법을 추진했다. 그 뒤 한국의 세계언론자유지수 순위는 잦은 하락과 소폭 반등을 거듭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인 2016년에는 70위까지 떨어졌다. 당시 국경없는기자회는 “박근혜 대통령 치하에서 미디어와 정부가 커다란 긴장 관계에 놓여 있다”며 “정부는 비판을 참지 못하고 미디어를 간섭해 언론의 독립성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 자유 상황이 다시 호전을 보인 데는 촛불의 힘이 컸다. 70위까지 떨어졌던 순위가 2017년 63위로 7계단 상승했고, 이듬해에는 43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국경없는기자회는 권력의 비리를 고발하고 비판을 이어간 언론의 용기와 역할을 높이 샀다. 이전 정권에서 자행된 언론 탄압이 상당 부분 해소된 점도 고려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취임 이후 발표한 100대 국정 과제에서 4번으로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독립성 신장’을 정하고, 임기 내 2022년까지 한국의 세계언론자유지수 순위를 30위권으로 되돌려 놓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후 상황을 보면 41위(2019년), 42위(2020년) 등 별다른 개선이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보도가 말하지 않는 진실이 있다. 언론 자유에 부정적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평가되는 보수 정권에서도 한국은 2010년(42위), 2011년(44위) 등 40위 권 언저리에 있었다는 점이다. 

 

세드릭 알비아니(Cedric Alviani) 국경없는기자회 동아시아 지부장은 이번 발표에 대해 “한국에서 기자 괴롭힘이 심해지는 것을 우려한다”면서 “당국은 기자들이 사법적, 물리적, 온라인 할 것 없이 괴롭힘을 당하지 않으면서 업무를 수행하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정부가 사실상 공영방송 사장을 임명하는 구조가 바뀌지 않았고, 명예훼손죄를 형법으로 다스리는 점, 시대착오적인 국가보안법 등 고질적인 과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도 개선할 점으로 꼽았다. 


10년동안 후퇴하는 아시아 언론 자유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언론 자유 상황은 지난 10년 동안 계속해서 후퇴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언론 자유 침해 점수가 평균 1.7% 상승했다. 이 지수는 각국의 기자와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설문한 내용을 정성적으로 분석해 산출하는데, 점수가 높을수록 상황이 나쁘다는 뜻이다. 설문에는 다원주의와 독립성, 취재 및 보도 환경, 법적인 틀, 투명성, 뉴스와 정보의 생산을 지원하는 인프라의 질 등을 평가하는 항목이 포함돼 있다. 

 

국가 선전 매체만 허용하며 정보를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북한(1계단 하락한 180위)과 중국(작년과 같은 177위)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오래된 골칫거리다. 그러나 어느 나라든 언론 자유는 늘 잠재적 위험에 처해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대표하던 모델이었지만 올해 다섯 계단 하락한 호주(26위)가 그렇다. 지난해 호주에서는 연방 경찰이 언론인 자택과 국영방송 본사를 압수 수색했다. 탐사 보도를 위축시키고, 취재원 보호를 위협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호주 헌법이 국민의 알 권리와 알릴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기도 했다. 

 

한때 30위권이었던 일본도 올해는 66위를 기록했다. 보수 정권하에서 기자들이 취재 활동에 제약을 느낄 뿐 아니라 우파 세력에 괴롭힘 당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일본의 순위는 특히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크게 떨어졌는데, 시민은 물론이고 언론에도 관련 정보 접근의 차단이 지속되고 있다. 

 

반대 선상에서 말레이시아(22계단 오른 101위)와 몰디브(19계단 오른 79위)는 독재 정권을 몰아낸 데 대한 기대감 때문에 순위가 크게 올랐다. 언론 환경에 정치적 상황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드릭 알비아니 동아시아 지부장은 아시아의 어두운 10년과 관련, “비민주적이고 전체주의적인 관행이 도입됐으며, 포퓰리즘(populism)의 등장으로 언론인 증오가 심화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언론의 극단적인 양극화 양상을 우려했다. 비판적 저널리즘을 ‘반정부적’ 혹은 ‘반민족적’으로 간주하며 용인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에 언론의 사명을 다하려는 이들이 자유 수호의 최전선에 놓였다. 스리랑카(127위)나 홍콩(80위)의 민주화 시위에서 그랬듯 언론인들은 경찰 폭력의 표적이 되고 있다. 

 

이념적 혐오는 오늘날 정보의 핵심 전장이 된 인터넷에서도 표출된다. 온라인상에서 언론인에 대한 물리적 공격이 댓글부대 혹은 광클릭 집단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데, 특히 아시아에서 이들은 차별과 증오 발언을 서슴지 않는 민족주의-포퓰리즘의 선봉 역할을 하고 있다. 


북유럽은 언론 자유 청정지역인가


세계언론자유지수가 발표되면 한국은 몇 위인가 다음으로 많이 받는 질문이 있다. 어디가 1위냐는 것이다. 올해는 지난해에 이어 노르웨이가 다시 정상을 지켰다. 4년째다. 핀란드와 덴마크, 스웨덴이 뒤를 이었다. 그렇다고 이들 국가가 완벽한 언론 자유를 누리고 있지는 않다. 그런 곳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다. 

 

 


 

[그림 2] 2020 세계언론자유지수 <출처 - 필자 제공> 

 

1776년 세계 최초로 언론자유법을 만든 스웨덴은 언론인을 향한 사이버 폭력이 증가해 작년보다 한 단계 하락한 4위를 차지했다. 실제로 2016년 스웨덴 편집인협회 조사 결과, 스웨덴 언론인의 3분의 1이 온라인상에서 증오를 경험했으며 그 위협이 '자기 검열'로 이어지고 있다고 답했다. 

 

국경없는기자회가 처음 세계언론자유지수를 발표한 2002년부터 가장 오랫동안 1위를 지키던 핀란드도 좀체 정상 자리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2017년 군 정보당국이 러시아에 스파이행위를 했다고 보도한 일간지 기자의 집을 수색한 뒤부터다. 최근에는 일부 정치인들이 소셜미디어에서 언론인을 비난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각국의 언론 자유 상황은 지도에서 색으로도 구분된다.[그림2] 언론 자유가 좋으면 흰색, 양호하면 노란색, 문제가 있으면 주황색, 나쁘면 빨간색, 매우 나쁘면 검은색을 부여하는 식이다. 올해 흰색을 받은 국가는 지난해에 이어 8%대를 유지했다. 반면 매우 나쁨을 뜻하는 검은색 지역은 2%포인트 오른 13%였다. 예상대로 서유럽의 언론 자유 상황이 가장 양호했으며, 중동과 북아프리카는 여전히 언론인에게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남아 있다.

 

“언론 자유는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다” 

 

국경없는기자회는 오늘날 언론 자유를 위협하는 요소를 크게 다섯 가지로 본다. 독재와 권위주의 또는 포퓰리즘 정권 지도자들이 정보를 통제하는 ‘지정학적 위기’, 디지털 발달로 저널리즘이 선전과 광고 소문과 뒤섞인 ‘기술적 위기’, 양극화와 억압적 정책에 기인한 ‘민주적 위기’, 언론을 의심하고 증오하는 ‘신뢰의 위기’, 양질의 저널리즘을 파괴하는 ‘경제적 위기’가 그것이다. 

 

국경없는기자회는 올해의 경우 이에 더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상황이 더 악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크리스토프 들루아르 사무총장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황을 악화시키는 한편,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향유할 권리를 위협하는 요인”이라며 “2030년 정보의 자유와 다원주의, 신뢰성을 결정지을 일들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는 단연 내년 세계언론자유지수의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 팬데믹에 대처하는 각 정부의 태도는 올해 세계언론자유지수와도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다. 대표적으로 중국(177위)과 이란(3계단 내려간 173위)은 자국의 코로나19 발생 정보를 광범위한 수준으로 검열하고 있다. 

 

특히 감염병이 처음 발생한 중국에서는 앞서 바이러스 유행을 경고한 의사 리원량(李文亮)이 당국의 압박을 받다 사망했고(사인은 바이러스 감염이었으나 그의 죽음에는 의혹이 많다), 이후 우한을 현장 취재해서 알린 홍콩 출신 시민기자가 자국으로 돌아온 뒤 석 달 넘게 실종 상태다. 중국은 이 밖에도 현지에서 코로나19 상황을 보도해온 미국 뉴욕타임스 기자의 비자 연장을 거부하는 등 4월 기준 최소 13명의 외신기자들을 사실상 추방했다. 이라크(6계단 내려간 162위) 역시 코로나19 관련 공식 집계를 요구하는 기사를 게재한 로이터통신에 3개월간 취재 허가를 박탈했다. 북한도 현재까지 코로나19 사망자가 한 명도 없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이런 대규모 보건 위기에 시민들이 정확한 정보를 접하지 못하면 그 피해가 더 커진다는 점이다. 혼란을 틈타 권위주의 정부들은 정보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가짜뉴스법’ ‘코로나법’ 등을 입법, 남용하고 있다. 헝가리(89위)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거짓 정보에 최대 징역 5년까지 처할 수 있는 코로나19 법안을 통과시켰다. 알제리(146위)도 코로나19로 국회가 텅 빈 사이 ‘가짜뉴스법’을 졸속 입법했다. 이미 관련법이 있었던 이집트(163위)와 싱가포르(158위)는 이를 과대 적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크리스토퍼 들루아르 사무총장은 “공중 보건 위기를 권위적 정부들이 사악한 ‘충격적 독트린’을 실행할 기회로 악용하고 있다”며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조치들이 정치가 멈춰 있고 대중이 망연자실한 상태에 놓여 저항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시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다가올 결정적 10년이 재앙이 되지 않으려면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나서 언론인이 사회 안에서 신뢰받는 제삼자의 역할을 완수할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언론인 또한 그런 역할을 수행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 자유는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다. 시민들이 관심을 갖고 수호하려 노력하면 반드시 좋아진다. 이는 한국이 지난 15년 동안 겪은 변화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국경없는기자회는 짧은 민주주의 역사에도 역동적으로 언론 자유를 수호해온 한국을 주시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물론, 지구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시민들이 질적 언론을 지지하고, 문제 제기에 동참하며, 기자들 스스로가 책임의식을 갖는다면 어느 때보다 위협 요소가 많은 정보의 팬데믹 속에서도 우리는 저널리즘을 긍정적으로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 

 

  • 필자 : 김혜경
  • 소속 : 국경없는기자회
  • 직함 : 한국 대표
  • 발행 : 2020-06-02
  • 조회수 : 1,838
  • 키워드 : 세계언론자유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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