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비롯한 유럽 언론사들 사이에선 최근 다양성, 공정성, 포용성을 의미하는 DEI가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DEI의 개념은 무엇이고 오늘날 DEI가 주목받게 된 배경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 알아보고, 우리 언론의 DEI 현황과 향후 방향성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최근 미국 및 유럽 언론사를 중심으로 다양성, 공정성, 포용성(DEI: Diversity, Equity, Inclusion) 가치를 실천하기 위한 운동이 뉴스룸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1) 미국 뉴욕타임스는 정확한 보도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보도를 위해서는 뉴스룸의 DEI가 필수적이라고 보고 이를 높이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영국 BBC는 여러 국가의 공영방송과 제휴를 맺고 콘텐츠 제작 관련 50:50 평등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
미디어 영역에서 ‘다양성’은 오랫동안 핵심 가치로 받아들여졌다. 많은 나라에서는 의견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언론 자유를 헌법 조항으로 명시했다. 소수 채널이 다수의 시청자에게 영향을 미쳤던 방송 영역에는 다양성 보장을 위해 겸영 금지를 비롯한 소유권 규제가 있었다. 지역 여론 다양성을 위해 여러 국가는 지역 언론에 대한 지원 정책을 펴왔다. 그리고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는 다양성 구현을 위해, 인력 채용 과정에서 성적·인종적 차별을 금지하는 동등한 고용 기회 보장을 방송 사업자 면허 갱신 조건으로 제시한 바 있다.2)
DEI에 관심 쏠리는 이유
미디어 영역에서 다양성은 꽤 오랫동안 논의됐지만, 최근 들어 DEI에 대한 관심이 부상한 것은 다양성 가치가 언론 현장에서 제대로 실천되지 못하고 있다는 성찰로부터 시작됐다. 2017년 은밀하게 이뤄졌던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MeToo) 운동이 벌어지면서 기업 전반적으로 조직문화 쇄신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많은 기업은 조직원 구성의 다양성과 구성원 간 관계의 공정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미투 운동은 기업뿐만 아니라 언론사에도 반성의 계기를 만들었다. 언론계 내부적으로도 미투 운동이 벌어졌고, 유명 뉴스 앵커들이 물러나는 일이 발생했다. 다른 한편으로, 성폭력이 사회 구석구석 만연해 있음에도 언론이 이 문제를 선제적으로 의제로 설정하지 못했던 저널리즘 실패 원인으로 남성 중심 뉴스룸 구성 문제가 지적됐다.
2020년 미국 미네소타에서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 사망 사건과 흑인 생명 보호 운동(Black Lives Matter)에 대한 언론 보도 역시 다양성을 성찰하는 계기가 됐다. 미국 언론이 사건의 발단이었던 경찰의 폭력성보다는 흑인의 ‘약탈’과 ‘방화’를 강조함으로써, 백인 중심의 인종적 편견을 드러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런 보도를 접한 흑인 생명 보호 운동 참여자들이 현장 취재 기자에게 불신을 드러내며 인터뷰를 거부하거나 취재를 방해하는 일도 발생했다. 미국 언론 보도에서 인종적 편견은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됐다. 1968년 커너위원회(Kerner Commission)가 발표한 보고서는 “언론 직업군은 흑인의 발굴, 고용, 승진 문제에 있어 충격적이게도 과거 회귀적이다”라고 비판한 적이 있으며,3) 최근에는 뉴스룸 구성의 인종적 다양성을 추구하지 않고는 언론 보도상의 편견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인식에 도달했다.
실제로, 2018년 퓨리서치센터가 미국 고용 데이터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4) 미국 전체 노동자 중 백인은 65%였지만, 뉴스룸 노동자 중 백인은 77%로서 12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남성은 전체 노동자 중 53%였지만, 뉴스룸에서는 61%로서 8포인트 높았다. 50세 이상 연령대의 경우, 전체 노동자 중 백인 남성 비율은 39%였고, 뉴스룸에서 백인 남성 비율은 56%로서 17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과거 세대일수록 다른 직군에 비해 언론 직군에서 백인 남성의 비중이 더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DEI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뉴스 소비 성향 변화에 따른 사회적 갈등 심화라는 거시적 맥락에서도 접근할 수 있다. 디지털 환경에서 뉴스 수용자들은 다양한 정보 소스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지만, 많은 정보 소스 중 자신의 기존 신념이나 태도에 부합하는 정보만 선별·소비하는 ‘선택적 노출’ 현상이 보편화하고 있다. 정보에 대한 선택적 노출은 기존 신념과 태도를 강화하는 결과를 발생시키며, 이는 성·인종 이외에도 세대·지역·계층에 따른 스테레오타입 고착화와 사회적 갈등 심화를 초래할 수 있다. 그리고 언론사도 뉴스 수용자를 선별함으로써 자사 수용자의 스테레오타입이나 편향성에 영합하는 내용의 보도를 지속할 수 있다.
디지털 환경에서는 개인 추천 알고리즘도 다양성을 축소하고 사회 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위치 기반 정보, 검색 기록, 사회연결망 등 여러 요인을 반영해 구성되는 알고리즘은 이용자의 선호도와 성향에 부합하는 정보나 콘텐츠를 선별해 노출함으로써 이용자 편견과 편향성을 강화하는 ‘필터버블’ 현상을 낳을 수 있다.
미디어 영역에서 다양성, 공정성, 포용성이란
미디어 영역에서 다양성 논의는 오랫동안 있었지만, DEI 관점에서 아직 포괄적인 이론 체계를 갖추지는 못했다. 일반적으로, 다양성(diversity)은 주어진 환경에서 서로 다른 인구학적 특징과 사회 정체성을 가진 존재가 공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정성(equity)은 모든 개인을 불편부당하고 공평하게 대우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공정성은 개인별 정체성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차이를 인정한 상태에서 공평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평등(equality) 개념과 다소 차이가 있다. 마지막으로, 포용성(inclusion)은 구성원 사이 관계가 갈등과 대립이 아닌 상호 이해와 존중의 바탕 위에서 공동체 소속감을 갖도록 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미디어 영역에서 DEI는 세 가지 수준에서 단계별로 논의될 수 있다. 첫 번째 수준은 뉴스룸 또는 미디어 조직 구성의 DEI다. 뉴스룸 인력 구성에 있어서 다양성은 뉴스를 생산하는 언론인의 성별이나 성적 정체성, 인종, 세대, 출신 계층, 출신 지역 등에 있어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섞여 있는 비율로 조작적 정의를 내릴 수 있다. 공정성은 서로 다른 배경과 정체성을 가진 언론인 사이의 차별 해소 및 불편부당한 대우를 의미한다. 뉴스룸에서 포용성은 다양한 구성원이 개인적 고립이나 대립을 넘어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상호 이해와 공통의 목표에 도달하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다.
두 번째는 콘텐츠 수준의 DEI다. 콘텐츠에 있어서 다양성은 언론사별로 뉴스에서 조명하거나 인터뷰를 통해 인용하는 인물이 얼마나 다양한가로 측정할 수 있다. 공정성은 콘텐츠에 등장하는 서로 다른 인격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을 극복하고 불편부당하고 동등한 관계로 재현하는 것이다. 포용성은 갈등 지향적 프레임 대신 ‘솔루션 저널리즘’이나 ‘평화 저널리즘’처럼 갈등 해소를 지향하는 것이다.
마지막은 콘텐츠 노출 수준에서 DEI다. 노출의 다양성은 이용자별로 접근 가능한 콘텐츠를 총합적으로 고려할 때의 잠재적인 다양성으로 정의될 수 있으며, 해당 콘텐츠의 실제 이용 여부와는 구분된다. 공정성은 이용자별로 가용한 콘텐츠가 총합 수준에서 서로 다른 입장을 대변하는 프레임을 공평하게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포용성은 이용자가 갈등과 반목을 조장하는 프레임보다는 상호 이해를 도모하는 프레임의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사회적 대화에 참여할 기회를 갖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뉴스룸,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최근 DEI 담론의 출발점은 뉴스룸의 인력 구성이다. 대체로, 언론인은 한 사회에서 엘리트 계층이나 명문대 출신 중에서 선발됐다. 성별로는 남성이 더 많았으며, 다인종 사회에서는 백인이 많았다. 엘리트 위주의 뉴스룸 구성은 사회에서 주변화된 사람들을 과소 대표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성폭력을 당하는 여성이나 인종차별 문제를 충분히 비중 있게 다루지 못하는 문제 이외에도 사회경제적 소외 계층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생산하는 저널리즘은 어느 한 관점의 사람들이 자기들끼리만 모여 만드는 저널리즘보다 훨씬 우수”하다는 말처럼,5) 뉴스룸의 DEI는 다양한 목소리를 들려주는 저널리즘 미션 수행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다만, 뉴스룸의 DEI는 기본적으로 뉴스룸 인력 구성이 사회 인구학적 구성을 대표해야 한다는 생각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한점이 있다. 단일 뉴스룸이 성별·인종별·연령별 구성비를 반영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학력·소득 수준을 비롯한 사회경제적 요인, 출신 지역과 같은 지리적 요인, 종교나 정치 성향과 같은 이념적 요인, 성 소수자나 장애인과 같은 특수 집단 비율을 뉴스룸 구성에 기계적으로 반영하는 데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른다.
일반 기업과 달리 언론사가 추구하는 DEI는 순수하게 뉴스룸 인력 구성 문제로 환원되지 않으며, 콘텐츠 DEI의 확대를 전제하고 있다. 그리고 뉴스룸 DEI가 콘텐츠 DEI와 인과론적 관계에 있는지도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며, 콘텐츠 DEI는 독자 영역으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다.6) 즉, “한 명의 아시아계 기자와 한 명의 흑인 기자 그리고 휠체어를 타는 기자 한 명을 편집국에 채용하고, 그래서 다원화의 자격을 갖췄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보도 내용을 인적 구성을 토대로 평가하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다”는 지적7)을 고려한다면, 뉴스룸 DEI 이외에도 콘텐츠 DEI를 별도로 취급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서, 콘텐츠 접근성 측면의 DEI도 독자적 영역으로서 별도로 다룰 수 있다. 소셜미디어, 검색엔진, 포털과 같은 플랫폼 기업이 운용하는 개인 추천 알고리즘은 이용자별 프로파일, 과거 콘텐츠 이용 이력, 사회관계망의 특성 등의 요인에 따라 설계된다. 개인 추천 알고리즘은 다양성을 증진하기보다는 편향성을 강화하는 필터버블 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며, 이는 알고리즘 책무성 논의에 DEI 관점을 삽입시킬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콘텐츠 접근 혹은 알고리즘 관련 DEI는 아직 공백으로 남아있으며, 이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가 요구된다.
DEI의 목표는 ‘사회 갈등 완화’
미디어 다양성에 대한 담론은 과거부터 존재했으나, 2017년부터 DEI 개념을 매개로 재조명받고 있다. 최근 언론사의 DEI 프로젝트는 뉴스룸 인력 구성이나 콘텐츠에서 인물 재현과 관련해 이뤄지고 있다. 성별 관련 DEI는 상당한 진척을 보였으며, 인종을 비롯해 다른 인구학적 요인으로 확대되고 있다. 미디어 영역에서 DEI는 뉴스룸에 국한되지 않는다. DEI의 궁극적인 목표는 갈등 관계에 놓여 있는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대화를 촉진하고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DEI를 추구함으로써 언론사는 수용자 신뢰를 제고하고 수용자 개발의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한편, 미디어 관련 DEI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언론사의 자발적 노력 이외에도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미국의 비영리기구인 민주주의펀드(Democracy Fund)는 인종 갈등처럼 사회적 갈등 요인이 되는 이슈와 관련해 DEI 펀드를 집중 편성하고 언론인 대상 DEI 연수 프로그램 개발을 지원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8)
DEI를 명시적으로 표방하지는 않지만 최근 한국 언론에서도 유사한 노력이 있었다. 특히, 과거에 비해 뉴스룸에서 여성 언론인 비율이 확대되고 있으며, 여성이 편집국장 등 고위직에 임명된 사례도 있었다. 이런 노력이 여러 요인으로 확대되고 문화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우선 뉴스룸 구성과 콘텐츠 구성에 있어 다양성 구현 정도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언론사별로 뉴스룸 구성과 제작된 콘텐츠에 대해 자체 분석을 실시하고 이 결과를 <DEI 보고서>로 공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DEI 보고서> 제작에 대해서는 공적 기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또한 DEI 관련 언론 연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언론사별 DEI 담당자를 지정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연수를 통해 DEI를 확대 보급할 수 있다.
1) Cherubini, F., Newman, N., & Nielsen, R., <Changing Newsrooms 2020: Addressing Diversity and Nurturing Talent at a Time of Unprecedented Change>, Reuters Institute for the Study of Journalism, 2020.
2) Napoli, P., 《Foundations of Communications Policy: Principles and Process in the Regulation of Electronic Media》, Hampton Press, 2001.
3) Delaney, P., <Kerner report at 50: Media diversity still decades behind>, USA Today, 2018.3.20, https://www.usatoday.com/story/money/nation-now/2018/03/20/kerner-report-50-media-diversity-still-decades-behind/1012047001/
4) Grieco, E., <Newsroom employees are less diverse than U.S. workers overallhttps>, Pew Research Center, 2018.11.2, https://www.pewresearch.org/fact-tank/2018/11/02/newsroom-employees-are-less-diverse-than-u-s-workers-overall/
5) 톰 로젠스틸·빌 코바치,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 209쪽, 한국언론진흥재단, 2014.
6) Napoli, P., 《Foundations of Communications Policy: Principles and Process in the Regulation of Electronic Media》, Hampton Press, 2001.
7) 톰 로젠스틸·빌 코바치,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 211쪽, 한국언론진흥재단, 2014.
8) Polyak, M. & Donnelly, K., <Advancing 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 in Journalism>, Democracy Fund, 2019.10, https://democracyfund.org/wp-content/uploads/2020/06/2019_DF_AdvancingDEIinJournalism.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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