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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 저변 확대 토대로 미디어 비평의 질적 성숙 도모할 때
미디어 비평의 역사

등록일 : 2022-02-04

한국 사회에서 미디어 비평이 언제 시작됐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지금껏 많은 시도가 있어왔고, 매체의 발달에 따라 양상도 변화했다. 미디어 비평의 역사와 문제점을 짚어보고 개선 방향을 알아본다. 편집자 주 

 

흔히 언론을 ‘감시견(watchdog)’에 비유한다. 민주주의 사회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 위에서 작동하며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남용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감시견이 잠들어 있는 주인을 위해 집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는 누가 감시하는가? 감시견의 힘은 누가 제어하는가? 민주주의 사회가 감시견 못지않게 ‘감시견의 감시견’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디어 비평이란 바로 이 ‘감시자의 감시자’ 역할에 해당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역사적으로 한국 언론은 감시견의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오지 못했기 때문에, 감시견을 감시하는 역할의 중요성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돌아보건대 한국 사회에서 미디어 비평 영역 또한 감시견 못지않게 허약했던 건 마찬가지였다. 오늘날 미디어 비평이 양적으로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질적으로 충분히 성숙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 글에서는 미디어 비평의 변천과 역사적 문제점을 간략히 살펴봄으로써 향후 개선 방향을 성찰하고자 한다.

 

미디어 비평의 맹아기

 

한국 사회에서 미디어 비평의 시발점을 명확히 포착하기는 쉽지 않다. 전통적 미디어인 신문과 잡지가 새롭게 인기를 끌기 시작한 방송을 대상으로 한 비평이 효시라고 볼 수 있는데, 해방 이후부터만 놓고 본다면 1960년대의 라디오 프로그램 비평과 1970년대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비평이 여기에 해당한다. 텔레비전 비평의 경우 1972년 3월 조선일보에 여석기 연극평론가가 을 실은 것이 처음으로 받아들여진다.1)

 

그러나 초기 미디어 비평의 역사적 의미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저널리즘과 거리가 멀었을 뿐 아니라, 대중과 괴리됐기 때문이다. ‘점잖은’ 미디어인 신문 지면에 “나는 텔레비전을 잘 보진 않지만”이라고 운을 뗀 학자들이 엘리트주의적 관점에서 ‘저질스러운’ 방송의 선정성과 폭력성을 비판하고 훈계하는 천편일률적 비평이 다수였다.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뉴스 미디어는 신문이었지만, 신문 보도에 대한 비평은 부진했던 점도 한계였다. 이런 경향성은 1990년대 초반까지 계속됐다. “매체비평 하면 곧 텔레비전 비평을 연상할 만큼 매체비평은 텔레비전 비평에 치중돼있다”며 더 중요한 신문을 제대로 비평하지 못하는 왜곡된 구조가 지적받기도 했다.2)

 

저널리즘 비평의 빈자리를 채운 건 언론 전문지들이었다. 1964년 창간한 기자협회보는 독재 정권 시대 제도언론을 비판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1988년 창간한 PD연합회보(2006년 PD저널로 제호 변경), 1989년 창간한 언론노보(1995년 미디어오늘로 제호 변경)도 언론을 비평하는 언론의 몫을 마다하지 않았다. 또 다른 주목할 움직임은 1980년대 후반 전개된 텔레비전 보도 감시 운동이었다. YMCA시청 자운동본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주부 모니터 요원을 중심으로 선거보도감시단을 조직해 지방자치 선거 보도 내용을 분석했다. 텔레비전 뉴스가 최소한의 양적 균형을 맞추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친 운동으로 평가된다.3) 1984년 창립된 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주언론시민연합)도 1991년부터 보도 모니터링을 벌였다. 시민의 자발적 감시 활동은 처음부터 미디어 비평의 중요한 뿌리였던 것이다.

 

 

강준만 교수의 '저널룩' 《인물과 사상》 Ⓒ연합뉴스

 

 

언론 개혁 운동과 미디어 비평

 

미디어 비평의 역사를 논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강준만 전북대 교수다. 강준만의 실천적 지식 활동을 계기로 한국의 미디어 비평이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강준만은 ‘언론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선구적으로 밝혔고, 이후 언론 개혁이 사회적 화두로 부상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기성 언론의 강고한 진입 장벽을 넘기 위해 강준만이 비평의 도구로 삼은 대안 미디어는 출판이었다. 저널리즘(journalism)과 책(book)을 결합한 의미의 ‘저널룩’ 《인물과 사상》 시리즈가 1997년 1월 첫 출간 됐다. 성역 없이 언론의 왜곡과 기만을 비판하는 1인 미디어였다. 1998년 4월에는 월간 《인물과 사상》도 창간했다.

 

강준만이 비판을 집중한 곳은 기득권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보수 언론이었다. 민주화 이후 정치권력이 퇴조했지만 재벌로 대표되는 경제권력이 아직 부상하기 전 권력의 공백이 발생한 틈새를 치고 들어온 보수 언론은 1990년대 후반 당시 이른바 ‘언론권력’으로 군림하며 정치와 경제, 문화 등 사회 모든 영역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강준만의 미디어 비평은 한국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언론권력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1등 신문’ 조선일보가 극우 이데올로기와 상업주의를 절묘하게 결합한 신문임을 강조하며 제안한 그의 ‘조선일보 제 몫 찾아주기 운동’은 이후 한국 사회를 강타한 ‘안티조선 운동’의 모태가 됐다.

 

강준만의 글쓰기는 때마침 확산하기 시작한 인터넷과 결합하며 대중적 언론 개혁 운동의 불쏘시개가 됐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쉬운 언어로 상대를 실명 비판하는 그의 방식은 온라인 문화와 효과적으로 조응했다.4) PC통신을 거쳐 인터넷 사이트 ‘안티조선 우리모두’에 모여 언론 개혁을 목표로 왕성한 온라인 토론을 벌인 이용자들은 최초의 대중 미디어 비평가가 됐다.

 

새롭게 문을 연 개혁 성향의 인터넷 뉴스 미디어들도 가세했다. 오마이뉴스, 대자보, 서프라이즈, 딴지일보 등이 언론의 기사와 관행을 비판하며 게재한 기사들은 명시적으로 이름을 달지 않더라도 일정 부분 미디어 비평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언론 개혁 운동의 대중화는 미디어 비평의 수요와 공급을 모두 확장했다. 언론 개혁 운동과 미디어 비평은 언론의 문제를 바로잡는 것을 공통의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태생적 친화성을 갖는다. 언론 개혁 운동과의 결합을 통해 미디어 비평은 학자들의 고답적 저널리즘 비평을 넘어 다양한 형식과 성격으로 외연을 확대할 수 있었다.

 

 

대자보, 딴지일보, 오마이뉴스 <출처 – 각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매체 간 상호 비평의 시대

 

언론 개혁을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는 자기성찰에 소홀하던 기성 언론에도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2000년을 전후해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언론계 내부에서 매체 간 상호 비평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1996년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간의 이른바 ‘신문전쟁’ 사례에서 보듯 자사 이기주의나 타사 비방을 목적으로 간헐적 상호 비난을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정기적으로 언론계 이슈를 다루고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보도가 이루어진 건 주목할 변화였다.

 

언론 개혁을 지향하는 진보 성향 신문사들이 미디어 비평에 많은 자원을 투입했다. 대한매일은 1999년 8월부터, 경향신문은 2001년 4월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한 면 전체를 털어 관련 기사와 고정 칼럼을 실었다.5) 한겨레는 1988년 창간 때부터 여론매체부를 두고 미디어 비평을 꾸준히 해오던 터였다. 고정 지면 외에 2001년 <심층해부 언론권력> 시리즈를 연재하며 보수 언론의 친일 행적과 군사정권 미화, 사주일가 비리 등을 고발한 것도 한겨레였다.

 

방송사들도 나섰다. 2001년 4월 MBC가 <미디어비평>을 신설했다. MBC의 비평 프로그램은 2003년 11월 MBC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 2005년 2월 MBC <뉴스플러스 암니옴니>로 이름을 바꿔가며 2006년 5월까지 이어졌다. 2003년 6월에는 KBS가 <미디어 포커스>를 신설했다. EBS도 그해 10월 <미디어 바로 보기>를 시작했다.

 

정기적으로 방영되는 비평 프로그램 외에도 MBC 은 2000년 5월 ‘족벌은 영원하다’, 2001년 2월 ‘다시 신문개혁을 말한다’ 편을 통해, KBS는 2003년 특별기획 <한국 사회를 말한다>에서 ‘일제하 민족언론을 해부한다’, ‘신문, 누구를 위한 권력인가’ 편을 통해 언론권력의 어제와 오늘을 비판적으로 조명했다.

 

매체 간 상호 비평 역시 언론 개혁과 언론권력 견제에 집중했던 관계로 보수 언론을 주요 타깃으로 삼았고, 이는 보수 진영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미디어 비평은 정치적 편향성에 따라 특정 신문만을 때리는, ‘한마디로 조중동 비평’이라는 비판이었다.6) 더욱이 2001년 김대중 정권의 언론사 세무조사 이후 정부와 보수 언론 간의 긴장이 조성되고 이념 대립이 격화되면서미디어 비평을 질적으로 성숙시킬 생산적 담론의 형성 기회는 사라지고 말았다.

 

방송국 내부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비판을 업으로 삼지만 자신들에 대한 비판에는 익숙지 않았던 언론인들에겐 갑자기 늘어난 미디어 비평이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미디어비평>에 대해 MBC 보도국 기자들조차 “쓸데없이 평지풍파를 일으킨다”는 반응을 보였다.7) 언론을 감시하는 자의 윤리성이 미처 정립되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2004년 12월 ‘구찌 핸드백 사건’은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이 좌초되고 미디어 비평의 윤리성에 흠집을 남긴 불미스러운 사례였다.

 

미디어 비평의 대중화와 남겨진 과제

 

논란과 내·외부의 압력에 시달리던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은 이후 하나둘 퇴출 수순을 밟게된다. KBS의 <미디어포커스>는 <미디어비평>, <미디어 인사이드>로 옷을 바꿔입으며 명맥을 유지했지만 2013년 5월 끝내 폐지됐다.

 

2008년 이명박 정권의 출범과 방송 장악 이후 관련 프로그램이 크게 줄어들면서 미디어 비평은 위기를 겪는 듯 보였지만, 사실은 정반대에 가까웠다. 위기는 전통적 언론의 미디어 비평에 국한된 진단이었다. 생산 주체와 유통 플랫폼이 바뀌었을 뿐 미디어 비평은 저변에서 오히려 양적 성장과 외연 확장의 길을 가고 있었다.

 

이제 미디어 비평은 기성 언론이나 시민운동 단체만 하는 것이 아니다. 미디어 비평은 팟캐스트에도, 유튜브에도, SNS에도,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있다. 미디어 비평은 더 이상 소수 엘리트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전 국민의 대중 활동이 됐다. ‘안티조선 우리모두’에서 탄생한 대중 비평가는 이제 인터넷 공간 어디에서나 활동한다.

 

2017년 정권 교체 이후 KBS는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을 부활시켰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방영한 <저널리즘 토크쇼 J>였다. 보수 언론의 문제적 보도를 비판하며 언론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한 점은 예전 비평 프로그램과 같았지만, 유튜브를 통해 라이브 방송을 하는 등 대중과 함께 호흡하려 애쓴 점은 달라진 부분이었다. 시민과 대중의 높아진 위상과 참여 욕구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언론에 대한 문제의식의 확산과 디지털 미디어 혁명에 힘입어 미디어 비평이 민주화된 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많이 남아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파성의 극복이다. 진영 논리와 팬덤 정치가 공론의 장을 오염시키는 오늘날에는 미디어 비평의 외양을 하고 특정 정파의 이익에 복무하는 ‘양두구육(羊頭狗肉)’ 비평이 유행하고 있다. 합리적 비판에조차 정파성의 색깔을 칠하려는 보수 언론의 흠집내기와는 별개로, 미디어 비평이 상대 진영 공격의 무기로 활용돼선 안 된다는 점은 모든 비평 주체가 경계할 부분이다.

 

미디어 비평과 언론 혐오를 구분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유튜브나 팟캐스트에서 이뤄지는 비평 중 많은 수가 언론 전반에 대한 무조건적 분노를 부추기며 ‘기레기’ 담론을 무책임하게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미디어 비평의 외연이 아무리 넓어지더라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을 비이성적으로 비난하는 행태마저 비평의 범주에 포함할 수는 없다.

 

미디어 비평의 대중화를 촉발한 강준만의 책이 출간된 지도 어느덧 25년이 지났다. 한 세대를 넘긴 미디어 비평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 성인기에 접어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몸집을 키우고 뜨거운 열정을 과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대중 비평가들도 미디어 리터러시로 무장하고 나름의 전문성과 심층성을 갖춰야 한다. 확인된 사실과 논리적 추론을 근거로 언론 현실을 최대한 정확하게 분석하고 불편부당한 관점에서 비판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이제는 미디어 비평의 대중적 저변 확대를 이룬 토양 위에서 비평의 질적 성숙을 도모할 단계다.

 

 

 

 

1) 허엽, <매체 비평 프로그램의 현실과 쟁점: KBS <미디어포커스>와 MBC <미디어비평>을 중심으로>, 관훈저널, 89, 86-103쪽, 2003. 

2) 강준만, <매체비평의 현주소: ‘대중’을 무시한 매체비평은 ‘진정한 비평’이 아니다>, 저널리즘 비평, 8, 77-82쪽, 1992.

3) 강명구, <성찰적 미디어 비평을 위하여>, 한국언론정보학회 세미나 발표문, 2008.

4) 고재석, <미디어 권력과 지식인의 상징투쟁: 강준만의 경우>,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16. 

5) 김덕모, <지역언론계는 미디어 비평의 사각지대인가>, 관훈저널, 79, 67-76쪽, 2001.

6) 김우룡, <방송의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을 비평한다>, 한국방송학회 세미나 발표문, 2003.

7) 최용익, <현업에서 바라본 미디어 상호 비평의 어제와 오늘>, 한국언론정보학회 세미나 발표문, 2008

  • 필자 : 박영흠
  • 소속 :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 직함 : 초빙교수
  • 발행 : 2022-02-07
  • 조회수 : 262
  • 키워드 :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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