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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보도로 드러난 외신 기사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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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22-04-06

 

러시아군 공격으로 파괴된 우크라 하르키우시 청사 Ⓒ연합뉴스

 

 

국내 언론에서 외신 보도는 그다지 많지도 않고 인기도 없는 분야였다. 뉴스 전달 경로가 온라인으로 옮겨가면서 온갖 종류의 기사가 넘쳐나게 됐지만 이른바 레거시 미디어에서 해외 뉴스는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무역 규모가 세계 8위에 달할 정도로 해외시장에 국가 경제의 사활을 건 나라가 한국인데, 정작 국제뉴스와 담을 쌓고 지낸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심층 탐구가 필요한 이슈이자 국제적인 화젯거리가 될 만한 특이한 현상이다. 그런데 지난 1월 말부터 갑자기 국제뉴스가 모든 신문 지면과 방송 뉴스 시간에 급증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구소련권 국가 우크라이나가 뉴스의 초점이었다. 아마 대다수 독자나 시청자는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도대체 어디 있는 나라야?

 

직접 취재 찾아보기 힘든 우크라이나 보도

 

우크라이나 보도의 홍수는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국경 집결 상황을 추적하면서 대대적인 침공 가능성을 경고하는 미국 정부의 공식 발표에서 시작됐다. 실제로 지난 2월 24일 러시아는 국경을 넘어 대대적인 공세를 감행했고, 이후 전투 진행 상황과 각국의 대응 조치는 거의 실시간으로 국내 언론에 보도됐다. 마치 국내의 대형 사건 사고처럼 외신이 이처럼 입체적으로, 자세하게 다뤄진 사례는 그동안 극히 드물었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둘러싼 국가 간의 비난과 공식 입장에서부터 주요 도시에서의 전투 경과와 피해 상황, 우크라이나 시민의 반응, 해외 거주 우크라이나인의 동향까지 기사 주제와 범위는 전례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풍부했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국제 경제와 타 대륙에 미친 영향을 다룬 기사도 보도됐다.1) 국내 언론 보도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제 머나먼 이국땅에서 벌어지는 국지전을 넘어, 제3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세계 경제 위기를 초래할지도 모르는 핵폭탄급 사건으로 확대됐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관련 보도 내용을 살펴보면 전쟁이라는 특수한 사태를 보도하는 어려움에서 발생하는 단기적인 한계도 있지만, 그동안 한국 언론의 보도 전반에 고질화한 구조적 악습이 판박이처럼 되풀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특징은 보도의 엄청난 양과 중요도에도 불구하고 직접 취재가 거의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해 쏟아져 나오는 기사는 언뜻 보기에 상당히 자세하고 생생한 현장감을 전해주는 듯하다. 각국 지도자, 우크라이나 정치인이나 군 지휘관, 일반 병사와 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의 인터뷰도 인용했고, 현지 상황에 대한 묘사도 꽤 생동감이 있다. 텔레비전 뉴스는 현지의 전쟁 장면을 생생하고 현장감 있게 보여준다. 연일 이어진 기사마다 기자 이름(byline)도 빠짐없이 붙어 있어, 마치 기자가 현장에서 뉴스를 전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런데 여기서 불편한 진실은 이 기사 작성의 근거가 된 취재 정보 중 국내 언론사 기자의 현장 취재는 고사하고 어떤 형태로든 자체 취재를 통해 얻어낸 정보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지금까지 나온 우크라이나 관련 기사는 거의 AP, 로이터, AFP 등 해외 통신사와 CNN, 뉴욕타임스, 더타임스, 가디언 등 해외 메이저 언론사 기사를 정리해 옮겨놓은 것이다. 심지어 미러나 뉴욕포스트 등 영미권의 타블로이드 기사 내용까지 국내에 소개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CNN은 현재 우크라이나 리비우에 취재본부를 두고 무려 75명의 직원을 파견해 생생한 뉴스를 송고하고 있다. 이 수치는 구소련권 취재를 전담해온 전문기자뿐 아니라 통역이나 운전 등 보조 인력까지 포함한 것이다. 영국 언론사들도 50명 이상의 기자를 우크라이나 현장에 투입했다. 우크라이나에 파견된 기자 중 일부는 호텔 발코니에서 저 멀리 치솟는 연기를 바라보면서 상대적으로 ‘편안하게’ 기사를 작성하기도 하지만, 일부 기자는 총탄이 오가는 살벌한 시가전 현장에서 철모와 방탄조끼 차림으로 목숨을 걸고 역사의 한 장면을 전하고 있다.

 

그런데 그간의 보도를 통해 파악한 바로는 국내에서는 우크라이나 현장에 뛰어든 기자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 어느 지상파 뉴스에서 방송기자가 폴란드의 국경 도시에서 우크라이나 난민을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우크라이나 영토에 직접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이 보도가 국내에서는 그나마 전쟁 현장에 가장 가까이 접근한 사례일 것이다.

 

팩트체킹 소홀한 출처 없는 기사가 가장 큰 문제

 

서구의 주요 통신사와 언론사에 의존하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러시아, 서방국가 간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서구 중심의 시각에서만 보게 된다는 원칙적 문제는 잠시 접어두자. 사건 현장 접근이 어렵고,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에 능통한 기자가 드물다는 현실적 문제도 있기에 2차 보도에 의존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치자.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외신 기사를 출처로 삼아 보도하면서도 출처조차 제대로 밝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또한 국내 언론사가 받은 해외 통신사 기사 중 다수는 아마 연합뉴스를 통해 번역돼 들어왔을 텐데, 관련 기사 어디서도 연합뉴스의 흔적은 발견하기 어려웠다. ‘AP=연합’이라고 표시해야 마땅할 기사 중 상당수가 버젓이 자사 기자 이름의 기사로 둔갑해서 나간 것이다.

 

좀 거칠게 표현하자면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기사 중 상당수는 여기저기서 검색해 짜깁기한 게으른 학부생의 리포트를 연상시킨다. 기사 중간에 “AP와 AFP 등에 따르면” 식으로 살짝 출처를 언급하긴 하지만 기사 내용과 인용문, 사실 중에서 어디까지가 AP통신 기사 내용이고 어느 부분이 담당 기자가 조사한 부분인지는 도대체 확인할 방도가 없다. 내용을 재구성하고 문장을 바꾼다고 남의 기사가 내 것이 될 수는 없다.

 

이처럼 출처를 정확히 명기하지 않고 베껴 쓰는 관행은 사실 우크라이나 취재의 어려움 때문에 새로 생긴 문제는 아니다. 연합뉴스가 제공한 기사를 살짝 고쳐 출처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자사 기사로 둔갑시켜 내보내는 관행은 언론계 전반에서 상당히 오래된 문제점으로 비판받고 있다. 그런데도 언론은 타사 보도, 특히 통신사 기사에 크레딧(credit)을 부여하는 일에 여전히 인색하다. 우크라이나 보도에서는 이러한 악습이 국내 언론사 전체의 문제로 확대됐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우크라이나 보도에서 드러난 구체적인 문제점으로는 팩트체킹 부족을 들 수 있다. 러시아 군이 주로 대도시를 공략 대상으로 삼으면서 키이우(키예프, Kiev), 하르키우(Kharkiv), 리비우(Lviv), 헤르손(Kherson) 등의 지명이 기사마다 빈번하게 등장했다. 그런데 동일한 도시를 언급하면서도 신문마다, 기사마다, 심지어 기사 내에서도 표기법이 들쑥날쑥하며 일관성 없이 사용됐다. 우크라이나 도시인만큼 우크라이나식 표기법을 따르는 것이 원칙인데도, 하르키우는 하리코프, 하르카우, 리비우는 르비브 등으로 때로는 러시아식, 때로는 영어식으로 원칙 없이 표현됐다. 자국 지명이 침략국인 러시아식으로 불리는 데 대해 우크라이나인들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는 상상에 맡긴다. 마침내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이 나서서 러시아식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지명으로 표기해달라고 요청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2)


사건 전개 과정의 배경을 분석하는 기사도 종종 나왔는데,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비되는 역사적 사례를 인용하는 과정에서 오류를 범한 기사도 있었다. 어떤 기사는 절대적인 군사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침략군에 대항해 싸운 우크라이나인들의 결연한 자세를 설명하면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시 용감하게 맞서 적을 격퇴한 현지인들(탈레반)의 사례를 대비시켰다.3) 그런데 당시 소련군에 맞서 싸운 토착 세력은 탈레반이 아니라 무자헤딘이다. 타국의 역사에 대한 무지와 더불어 팩트체킹을 소홀히 한 결과, 온라인 판에서 그치긴 했지만 이런 오류로 이어진 것이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에 맞는 외신 보도 필요

 

전쟁 진행 관련 보도의 시각이 전 세계 국가 차원의 공식적 대응에 초점을 맞추던 데서 우크라이나인들의 자발적 투쟁으로 옮아가면서 또 다른 형태의 실수도 나타났다. 서구 매체 중심에서 벗어나 키이우인디펜던트(The Kyiv Independent) 등 우크라이나 내부의 매체를 활용한 것까지는 좋았다. 물론 이것도 직접 인용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과정에서 보도의 출처로서 신빙성이 확인되지 않은 정보나 영상도 기사에 종종 등장했다.

 

일부 기사에서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올린 영상을 활용하기도 했는데, 이 중에는 ‘트위터 캡처’식으로만 밝혀 출처가 불분명한 자료도 있었다. “우크라이나에 있는 프리랜서 기자가 공개한 현장 영상을 보면”이라는 식의 모호한 출처 표기는 확인할 수 없는 무책임한 크레딧이나 마찬가지다.4) 사실상 기사 구색 맞추기로 영상을 활용하면서 진위성 여부는 확인하지 않거나, 아예 검증이 불가능하도록 작성한 기사인 셈이다. 심지어 우크라이나 주민들 항간에 떠도는 소문을 그대로 옮긴 믿거나 말거나 식의 타블로이드성 보도도 있었다.5)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각국의 대응이 관심사로 부각되자, 분석이나 취재에 근거하지 않고 정파적 시각을 어설프게 표출하는 보도도 등장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5일째 되던 날 한국 정부는 일부 국가들이 러시아 경제 제재에 동참한다고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제재 동참이 늦어지면서 러시아 수출 통제 관련 규제(FDPR) 면제 대상국에서 제외됐다. 그러자 일부 신문은 정부의 조치에 대해 ‘뒤늦게’, ‘뒷북’, ‘어설픈’ 등의 원색적 단어를 사용해가며 자극적인 비판 기사를 쏟아냈다.6) 성급한 비난에 동참한 일부 언론의 입장은 머쓱해졌다.

 

제재 조치 단행을 늦춘 것은 아마 러시아와 복잡하게 얽힌 기업-정부 차원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고려사항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실제로 일부 기사는 러시아 제재 조치로 일부 업종이나 기업 거래에서 이미 문제가 심각하다고 전했다.7) 한쪽으로는 정부의 제재 동참 지연을 비판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제재에 따른 기업 피해를 호소하는 모순된 태도도 나타났다.

 

문제는 정부의 ‘신중한’ 제재 동참에 대한 비판이 현안 분석을 통해 도출된 결론이 아니라 정부에 대한 언론사의 평소 시각을 정파 성향별로 그대로 재현했다는 것이다. 현장 접근성에 한계가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 보도와 달리, 러시아 제재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 문제는 국내에서 기존의 취재 인력만으로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주제다. 경제 부처나 재계, 기업 단체 등을 취재해서 수집한 기초 자료만 분석해도 그리 어렵지 않게 현황을 파악할 수 있다. 어쩌면 전황 보도 자체보다도 이러한 보도가 국내 독자나 시청자에게는 훨씬 더 절실하고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이슈의 중요성에 주목해 체계적으로 파고든 언론은 거의 없었다.

 

어쩌면 이미 정부 조치에 대한 판단은 내려졌으니 굳이 취재까지 필요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복잡한 현실을 잘 취재해서 팩트를 전하는 일은 게을리하면서, 어설프게 시민을 가르치고 계몽하려 드는 평소 습관이 우크라이나 보도에서도 가감 없이 되풀이된 셈이다. 우크라이나 보도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거울삼아, 한국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게 국제뉴스를 좀 더 확대하고 취재 체제를 좀 더 체계적으로 정비하는 계기로 삼기를 바란다.

 

 

 

 

 

 

 

 

1) 정재호, <러시아 야욕의 슬픈 ‘나비효과’ ... 경제난·식량고 현실화된 3세계>, 한국일보. 2022.3.3,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030311260004569?did=NA

​2) 김경윤, <정부, 키예프 → 키이우 ... 현지어 발음 표기로 바꾼다>, 연합뉴스, 2022.3.2, https://www.yna.co.kr/view/AKR20220302130100504?input=1195m

3) 정현용, <[속보] 우크라 “러시아군 지쳤다 ...전차 191대 파괴">, 서울신문, 2022.2.28,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20228500135

4) 김소정, <러, 우크라 하르키우 정부청사에 미사일 공격...무차별 공세 (영상)>, 조선일보, 2022.3.1,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2022/03/01/NDQEI7Z4ZVBCNHM6VHZT3YP3K4/

5) 정은혜, <하루새 러 전투기 6대 격추 …우크라 지키는 ‘키예프 유령’ 실체[영상]>, 중앙일보, 2022.3.1,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51967

6) 양철민, <어설픈 중립외교에 .. 美에 미운털 박혀 휘청이는 한국경제>, 서울경제, 2022.3.1, https://www.sedaily.com/NewsView/2638XDLWXJ

7) 김경진, <루블화 가치 하락에 ‘화장품 안 사’ … 우크라 사태에 중소기업 속 터진다>, 중앙일보, 2022.3.1,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52089,

권민철, <러시아제재, 한국 조선업에 직격탄 …수 조원 피해 예>, 노컷뉴스, 2022.3.3, https://www.nocutnews.co.kr/news/5716644

  • 필자 : 임영호
  • 소속 :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 직함 : 교수
  • 발행 : 2022-04-06
  • 조회수 : 578
  • 키워드 : 전쟁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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