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스타트업 닷페이스가 설립 6년 만에 해산했다. 닷페이스는 기성 언론이 관심 갖지 않는 주제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여러 실험을 통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그럼에도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닷페이스의 성취와 한계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닷페이스는 2016년 출발한 뉴미디어 스타트업이다. 성범죄·젠더 이슈·기후 위기·장애 등에 관한 콘텐츠로 규모 있는 팬덤을 만드는 동시에 적지 않은 사회적 영향력을 만들어왔다. 그런 닷페이스가 2022년 여름 해산했다. 조직은 콘텐츠 제작 동력을 잃었고, 나름의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지만 드라마틱한 성장을 이어가긴 역부족이었다. ‘콘텐츠 제작 능력’은 뛰어났지만 ‘경영 능력’은 아쉬웠다.
닷페이스 조소담 대표는 해산 소식을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실 닷페이스를 시작한 2016년 이후 위기는 항상 있어왔고, 그때마다 여러 방법으로 돌파구를 모색해왔습니다. 그러나 자원의 한계를 크게 느끼고, 이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에너지가 줄어들었습니다. 매번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고, 여기서 종료하는 일 역시 우리가 용기 내어야 하는 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닷페이스가 돌파해야 할 한계가 무엇이었을까? 닷페이스가 걸어온 행적을 돌아보며 뉴미디어 스타트업의 의미와 한계를 살펴보려고 한다.
닷페이스의 콘텐츠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달라야 한다.”
닷페이스가 출발 당시 내걸었던 슬로건이다. 10년 뒤 꼭 변했으면 하는 지점을 얘기하고 새로운 상식을 제안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매체의 이름인 닷페이스는 마주해야 할 지점을 뜻한다. 창업자인 조소담 대표는 2016년 초부터 매체를 기획했고, 그해 미디어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메디아티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면서 본격 출발했다. 프로듀서와 필름메이커, 디자이너, 개발자 등 업계에서 뛰어난 창작자들이 모여 시작한 만큼 콘텐츠가 주목받았다. 초기에 기반을 둔 플랫폼은 페이스북이었다. 그해 5월 강남역 살인 사건이 있은 이후 10번 출구에는 피해자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붙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가장 처음 조명하기 시작한 것이 닷페이스였다. 포스트잇을 붙이는 이들을 인터뷰한 콘텐츠는 페이스북에서 주목받았고, ‘여성 혐오 범죄’라는 키워드가 공론화되기도 했다. 물론 이것이 닷페이스가 만든 것이라곤 할 수 없지만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또 닷페이스는 퀴어문화축제 현장에 들어가 프리허그를 하는 성 소수자 부모의 모습을 영상 콘텐츠로 만들었는데, 이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바이럴이 됐다. 기존 틀에서 완전히 벗어난 콘텐츠가 새로운 플랫폼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 모습을 보고 적지 않은 이들이 뉴미디어의 성장 가능성을 기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페이스북의 정책 변경과 함께 해당 플랫폼에 의존하던 중소 미디어들이 타격을 입었다. 이는 닷페이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반면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빠르게 성장했다. 영상 콘텐츠 제작 역량을 갖추고 있던 닷페이스는 유튜브에 빠르게 정착해 매체력을 키워갔다. 그리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프로젝트를 시도하기도 했는데, 시작은 십대 여성 성매수 문제를 다룬 ‘H.I.M 프로젝트’였다. 랜덤채팅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해 여성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매수를 시도하는 남성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했고, 10분 안팎 길이의 숏다큐멘터리로 제작했다. 콘텐츠 자체도 수백만 조회수로 흥행했으며, 관련 이슈가 여러 미디어의 보도로 이어지는 등 공론화됐다. 또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 개정 캠페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며 4,061만 원 펀딩에 성공했고 2,055명의 후원자를 모으기도 했다. 이어 아청법 개정 촉구 캠페인을 진행했고 1만 2,000명 이상이 서명했고 295개 단체가 참여했으며 4명의 국회의원이 공식 응답에 참여해 캠페인 후속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기존 언론들이 문제를 발견하는 역할에 그치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존재하는 동시에 ‘솔루션 저널리즘’이란 다소 추상적인 해결책이 존재한다. 닷페이스의 사례는 이슈를 끌어내 솔루션을 제시하고 문제 해결을 도왔다는 점에서 솔루션 저널리즘에 한 걸음 다가간 유의미한 사례가 됐다. 해당 프로젝트는 2018년 한국온라인편집기자협회가 주관하는 ‘온라인 저널리즘 어워드’ 비디오저널리즘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국내 태국 마사지 업소에서 일어나는 성매매의 실태를 취재한 ‘타이마사지’, 임신 중단 이슈를 점검한 ‘세탁소의 여자들’, 간호사와 승무원, 보조출연자, 라이더, 보육교사 등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낸 ‘할 말 많은’ 등 다양한 시리즈 콘텐츠를 제작했다.
닷페이스가 보여준 미디어 스타트업의 가능성
닷페이스는 지난 6년간 업계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입증했다. 그중 필자가 주목한 것은 세 가지다. 첫째, 매체의 팬덤 비즈니스 발전 가능성을 입증했다. 닷페이스는 방향성이 분명한 매체였다. ‘젠더 다양성과 평등’, ‘디지털 환경에서 늘어나는 성범죄’,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일할 권리’, ‘기후위기와 우리의 대처’, ‘다양해지는 개인, 가족의 삶의 형태와 뒤처진 제도’, ‘장애와 자유, 사회 접근성’ 등의 키워드에 집중해 관련 콘텐츠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닷페이스가 얻은 가장 큰 선물이라면 유료 후원자 ‘닷페피플’일 것이다. 닷페피플 수는 해산 당시 2,000명 수준으로 추정된다. 1만 1,000원 이상의 후원금을 내면 멤버십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였던 만큼 안정적인 수익원이 되어주었다. 동시에 닷페피플은 닷페이스가 내는 목소리에 동의하며 매체의 활동을 적극 지원한 만큼 탄탄한 비즈니스 모델 이상의 의미였다. 이들의 존재로 인해 닷페이스를 매체가 아니라 사회단체로 보는 시각이 존재할 만큼. 닷페이스의 해산 소식을 듣고 닷페피플은 하나같이 미안하다는 반응이었다. 너무 큰 짐을 맡겨만 두었다는 부채감을 말하는 이도 있었다. 닷페이스는 매체인 동시에 그 자체로 탄탄한 커뮤니티를 구축했었단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둘째, 콘텐츠 가치와 비즈니스 가치를 일치시킬 수 있음을 입증했다. 대개 뉴미디어 스타트업이 콘텐츠 가치와 비즈니스 가치가 충돌할 때 전자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비즈니스적 가치를 실현하지 못하고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닷페이스는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유의미하게 실현한 사례를 보여줬다. 대표적인 사례가 앞서 언급한 ‘H.I.M 프로젝트’다. 해당 프로젝트는 십대여성인권센터가 이슈화 목적의 홍보 콘텐츠 제작을 닷페이스에 의뢰하면서 시작됐다. 닷페이스는 단순 홍보가 아닌 유의미한 영향력을 만들자며 손을 잡았고, 홍보 영상이 아닌 다큐멘터리가 세상에 나왔다. 제작진의 인터뷰 요청을 뿌리치고 골목길을 질주해 도망가는 가해자 차량의 뒷모습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세탁소의 여자들’ 프로젝트 역시 약 5,000만 원 상당의 펀딩 금액을 달성했고 닷페피플 후원자를 모았으며 관련 캠페인은 크고 작은 사회적 영향력을 만들어냈다. 이어진 프로젝트들은 △사회가 주목해야 할 문제를 이슈화시켰고 △펀딩에 성공하며 문제해결에 직접적인 역할을 했으며 △콘텐츠 가치와 비즈니스 가치를 동시에 이뤘다.
셋째는 뛰어난 창작 조직에 자율성이 주어졌을 때,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걸 입증했다. 닷페이스는 초기부터 뛰어난 크리에이터들을 영입해 온라인 플랫폼에 어울리는, 동시에 플랫폼 이용자들의 반응을 이끌기에 적절한 콘텐츠를 빠르게 제작했다. 2016년 강남역 분위기를 영상에 담아 공유하는 일은 닷페이스 외에 누구도 하지 않은 일이었다. 이후 꾸준한 활동으로 페이스북에서 유의미한 반응을 만들어냈다. 페이스북에서 유튜브로 이용자들이 빠르게 넘어가는 시기에도 닷페이스는 해당 플랫폼에 맞는 콘텐츠를 만들어 매체력을 키웠다. ‘타이마사지’, ‘소울푸드’, ‘언커버드’, ‘간호사, LIFE’ 등 일부 시리즈 영상 콘텐츠는 OTT 플랫폼 왓챠에 올라갔고 영화, 드라마 등을 소비하는 시청자들에게 이질감 없이 다가갈 퀄리티로 발전시켰다. 닷페이스가 가진 잠재력은 결코 작지 않았다.
돌파하기 어려웠던 한계들
차갑게 말하자면 닷페이스는 독립적인 행보를 이어갔지만 스케일업(규모 확장)에는 실패했다. 기존 언론의 보도와 다른 감각적인 콘텐츠로 주목받았고 가능성을 입증하며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하지만 뚜렷한 수익모델을 만들지 못했고 조직을 겨우 유지할 수 있는 수준에 머물렀다. 닷페이스가 더 이상 돌파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한계’가 무엇이었을까? 현장에서 일해본 이들이 아니고서야 이를 모두 느끼고 공감하기 쉽지 않겠지만 관찰자 중 한 사람으로서 닷페이스가 풀지 못한 숙제를 추정해볼 수는 있겠다.
첫째, 유의미한 수준의 비즈니스 가치를 실현하지 못했다. 닷페이스 앞에 붙던 수식어는 ‘미디어 스타트업’이었다. 그만큼 미디어로서의 가치를 실현하는 동시에 스타트업으로서 드라마틱한 매출의 성장을 기대하는 시선이 존재했다. 그 기대를 차치하고서라도 닷페이스는 기존 팀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동시에 매체력 확장을 위한 인재 영입에 나설 재정적 여력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앞서 ‘콘텐츠 가치와 비즈니스 가치가 충돌할 때’를 언급하며 닷페이스가 두 가지 가치를 모두 실현한 사례를 만들었다고 했는데, 작은 팀이 해당 사례를 정기적으로 만들어내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닷페이스는 비즈니스 가치보다 콘텐츠 가치에 집중했다. ‘콘텐츠는 돈이 안 된다’는 푸념이 닷페이스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말이었다.
둘째, 방향성이 분명한 것은 팬덤을 만들어낸 동시에 영향력을 키우는 한계가 되기도 했다. 색깔이 분명할수록 공감하는 이들의 몰입도가 커질 수 있다. 다만 지지하는 이들의 규모는 그만큼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주장이 강하고 뾰족할수록 공감하는 이들의 수는 적어질 수밖에 없다. 24.5만 명의 유튜브 구독자, 약 2,000명의 유료 후원자가 6년간 만들어낸 결과다. 대단한 규모라고도 볼 수 있지만 성장세가 다
소 정체한 것도 사실이었다.
셋째, 솔루션 저널리즘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영역임을 확인했다. 앞서 닷페이스의 행보에서 솔루션 저널리즘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언급했지만 ‘가능성’까지였다. 이를 지속하기 위해선 돈 그 이상의 지원이 필요했다. 닷페이스는 이를 만들어 낼 여력을 필요로했다. 닷페이스가 집중했던 사회문제들은 먼저, 꾸준히 주목하는 그 자체로 정신적 피로를 견뎌야 하는 영역이다. 닷페이스는 작은 조직이었던 만큼 직원들이 일당백으로 일하고 있었다. ‘닷페이스의 마지막 이야기’ 영상을 통해 조소담 대표는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것들이 이야기의 범위가 아니라 싸움의 지점이 되어버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소현 피디는 “맥락이 복잡해지면서 어디까지 이야기하고 주장할지, 어떤 스탠스에 서야 할지 끝까지 답을 내리기 어려웠다”고 말했고, 장은선 피디는 “그게 제작자 입장에서 지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어두운 영역을 밝혀보겠다고 뛰어들어갔지만 그들 손에는 촛불이 전부였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쉼’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넷째, 특정 플랫폼에 대한 높은 의존도 역시 한계점이었다. 텍스트 콘텐츠를 주력으로 하는 매체라면 조금 자유로운 편이다. 개별 웹사이트를 운영하며 소셜네트워크를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한다면, 일부 마케팅 수단의 변화가 다소 악영향을 미칠지라도 매체의 존속 여부가 위협받진 않는다. 닷페이스의 경우 페이스북의 정책 변경으로 콘텐츠 바이럴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바 있다.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매체였던 만큼 유튜브의 성장이 닷페이스에게는 행운이 됐다. 다만 유튜브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것은 그 자체로 위험 요소였다. 닷페이스 콘텐츠에 사람들이 모였고 여기에서 발생한 트래픽의 수혜는 유튜브가 (물론 그 규모가 유튜브에겐 크지 않았겠지만) 차지한 것도 불편한 진실이다. 닷페이스는 유튜브 내부 채널로서는 그저 소작농이었으며 유튜브의 변화가 작은 매체에겐 치명적일 수 있다. 작은 영상 콘텐츠 매체가 자체 플랫폼을 꾸리는 건 여러모로 비현실적이다.
닷페이스는 실패한 매체일까
수년 전 플랫폼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뉴미디어란 단어가 주목받던 시절, 사람들은 해당 키워드를 중심으로 모였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콘텐츠들이 쏟아졌다. 닷페이스가 등장했던 2016년이 그러했다. 기성 언론에서 만나지 못했던 시도들이 이어졌고 유의미한 가능성을 발견해갔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단순화할 순 없지만) 지금껏 존속하는 미디어는 많지 않고 당시 업계에서 활발히 뛰던 이들 일부는 기성 미디어를 포함한 각자의 길을 찾아갔다. 다소 냉소적으로 보자면 당연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시도가 가능했던 시대에 그만한 시도가 있었던 것이고,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에 수많은 스타트업이 사라지듯 미디어 스타트업 역시 그러했던 것이다. 닷페이스 역시 그중 하나였다. 특히 기업으로서의 닷페이스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페이스북, 유튜브 등에 모인 수십만 명의 구독자와 수천 명의 유료 후원자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분명 존재한다. 닷페이스의 콘텐츠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고 누군가의 목소리를 대변했으며 문제를 탁월하게 해결하는 도구가 되기도 했다. 콘텐츠가 만들어낸 사회적 가치는 결코 작지 않았다. 2016년 당시 메디아티 영상전략팀장이었던 현 미디어 전문 인큐베이터 미디어오리 김나리 대표는 ‘닷페이스 같은 곳을 만들고 싶다’, ‘닷페이스를 모델로 해서, 다른 방식을 시도해보려 한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다고 한다. 그는 “닷페이스를 시작으로 한 새로운 저널리즘 스타트업들이 이제 어떤 영향력을 만들어낼지, 투자 생태계에선 ‘미디어’라는 속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투자해야 할 것인지 등 닷페이스가 던진 질문이 많다”며 “이 모든 질문은 어쩌면 닷페이스가 비영리 기업처럼 운영을 이어갔다면 던지지 못했을 메시지와 과제”라고 분석했다.
닷페이스 사례를 타산지석 삼아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려는 이들이 존재한다. 지금도 항해를 이어가는 이른바 ‘미디어 스타트업’ 역시 닷페이스를 지켜보았으며 여전히 생존과 성장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이들의 시도와 고민이 언제 어떤 결실을 맺을진 모르겠지만 이들에게 닷페이스가 유의미한 과제를 던진 것은 분명하다. 닷페이스 해산이 남긴 의미에 주목한 누군가가 또 다른 가치를 만들어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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