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말 JTBC를 시작으로 KBS, TBS, SBS미디어넷 등 주요 언론사들이 희망퇴직이란 이름으로 구조조정을 시행했다. 지상파 방송사, 종합편성채널, 케이블 방송사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단행된 미디어 업계 구조조정의 현황과 해결책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언론사에 가장 중요한 자원을 묻는다면 업의 특성상 누구든 인력을 꼽을 것이다. 그런데 이 중요한 자원이 점점 천대받는 시대가 되고 있다. 2023년 말 JTBC를 시작으로 미디어 업계 곳곳에선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었다. 이 바람은 지상파 방송사, 종합편성채널, 케이블 방송사를 가리지 않았고, 그 결과 수십 년 경력의 베테랑 기자를 포함해 수백 명의 인력이 언론계를 떠났다.
구조조정의 이유는 언론사별로 비슷했다. 세부적인 사정이야 조금씩 다르지만 ‘적자로 인한 경영 위기’를 내세운 점, 희망퇴직으로 시작해 사실상의 구조조정으로 끝났다는 점은 같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유튜브와 OTT로 대표되는 미디어 환경의 지각변동이 자리 잡고 있다. 광고 수익은 급감하는데 제작비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시청자들은 점점 전통적인 미디어를 외면하고 있는 잔혹한 현실 말이다. 과연 구조조정이라는 고육지책은 이러한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해법이 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우리는 이 방식으로 저널리즘의 가치를 지켜낼 수 있을까?
‘희망퇴직’이라 쓰고 ‘정리해고’라 읽는다
지난해 미디어 업계 전반에서 실행된 구조조정의 폭과 깊이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2023년 12월 JTBC가 권고사직에 준하는 강압적 방식의 희망퇴직을 진행, 80여 명의 구성원을 내보낸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엔 KBS, TBS, SBS미디어넷 등 주요 언론사들이 잇따라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구조조정의 이유는 각 사의 상황에 따라 달랐지만 그 규모와 방식은 예사롭지 않았다.
KBS는 2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특별명예퇴직과 희망퇴직을 시행해 110여 명의 직원이 회사를 떠났고, TBS는 아예 폐국 위기에 내몰리며 전체 직원 230명 중 100명이라는 충격적인 규모의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SBS미디어넷도 전체 구성원의 20%에 해당하는 50명의 희망퇴직을 추진했다.
특히 눈여겨볼 점은 대부분의 구조조정이 ‘희망퇴직’이란 이름으로 시작됐지만, 실제로는 정리해고에 준하는 강압적인 방식으로 진행됐다는 점이다. JTBC의 경우 “취재와 무관한 계열사로 발령 날 가능성” 등을 언급하며 사실상 퇴직을 종용했고, SBS미디어넷도 “희망퇴직을 하지 않으면 15%의 임금이 삭감되는 대기발령을 받을 것”이라는 압박을 가했다. 각 사의 노동조합은 한목소리로 ‘자발적 선택’이라는 희망퇴직의 본래 취지가 훼손됐다고 비판했지만 광고 수익 급감과 누적된 적자로 인해 경영난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언론사들은 인건비 절감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피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점은 이번 구조조정이 특정 매체 형태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상파 방송사, 종합편성채널, 케이블 방송사 등 매체 형태를 가리지 않고 구조조정이 단행됐다. 이는 개별 기업의 경영 문제를 넘어 미디어 산업 전반이 위기에 직면했음을 보여준다.
구조조정의 근본 원인은 광고 시장 붕괴
미디어 업계를 강타한 구조조정의 근본 원인을 거칠게 요약하면 광고 시장의 붕괴로 볼 수 있다. 방송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2023년 국내 방송산업 매출은 전년 대비 4.1% 감소하며 역성장을 기록했다. 특히 방송광고 매출이 전년 대비 5,926억 원(19.2%) 줄어들며 주요 수익원 중 가장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그 중에선 지상파의 타격이 가장 컸다. 2023년 지상파 전체 광고 매출은 9,279억 원으로, 전년 대비 2,825억 원(23.3%) 급감하며 사상 처음으로 방송프로그램 판매 매출이 광고 매출을 추월했다.
이러한 광고 수익 감소는 미디어 소비 행태의 급격한 변화와 맞물려 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 플랫폼의 성장은 시청자들의 이탈을 가속화했다. 《2023 방송영상산업백서》에 따르면 지상파와 유료방송을 모두 합산한 TV 총가구 시청률은 2013년 34.94%에서 2022년 30.17%까지 하락했다. 특히 10대와 20대의 TV 시청률은 각각 3%대에 머물러, 젊은 세대의 TV 이탈 현상이 두드러졌다.
여기에 제작비 상승이라는 부담이 더해졌다. 넷플릭스 <수리남>은 350억 원, 디즈니플러스 <무빙>은 500억 원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됐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글로벌 OTT의 등장으로 콘텐츠 제작 단가가 크게 상승했다. 줄어든 수익에 비해 늘어나는 제작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방송사들은 제작 편수를 줄이거나, 저작권을 포기하고 방영권만 사들이는 등의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각 사의 개별적인 위기 상황도 구조조정을 가속화했다. KBS는 수신료 분리 징수로 인해 급격한 수입 감소를 예상했고, TBS는 서울시 출연금 중단으로 존폐 기로에 섰다. SBS미디어넷의 경우 대주주인 태영건설의 경영 위기 여파로 253억 원의 사모사채를 매입하는 등 자금 유출까지 일어나며 이중고를 겪었다.
핵심 인력 이탈로 조직 경쟁력 약화돼
한편 이번 미디어 업계 구조조정의 가장 큰 특징은 희망퇴직이란 이름 아래 사실상의 강제 퇴직이 실시됐다는 점이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사 갈등도 격화됐다. 노조는 “직원 희생만을 강요한다”며 반발했고, 특히 경영진의 책임 소재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SBS미디어넷 노조는 “대주주의 이익만을 위해 경영적 판단을 한 임원들은 여전히 회사에 남아있고 희망퇴직에서도 제외돼 있다”며 경영진의 책임 회피를 강하게 비판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핵심 인력의 이탈로 조직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점이다. JTBC의 경우 희망퇴직을 단행한 직후 3개월 동안 평균 근속연수 5년의 젊은 기자 10명 이상이 회사를 떠났다. “뉴스 만드는 회사는 결국 사람 장사인데, 구조조정을 지켜보며 회사가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느꼈다”는 한 퇴사자의 말은 현장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남은 구성원들의 사기 저하와 불안감도 심각한 수준이다. “다음 차례는 누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조직이 병들고 있다”는 한국기자협회 JTBC 지회 성명은 구조조정 이후 조직 분위기를 잘 대변한다. 일각에선 보도 인력 감소로 인한 뉴스의 부실화, 저널리즘의 질적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 역시 나오고 있다.
위기 돌파 위해선 새로운 수익 모델 발굴 시급
올해 미디어 업계의 전망은 여전히 밝지 않다. 최근 발표된 <2024 방송통신광고비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방송광고 시장 규모는 3조 253억 원으로 2023년 대비 10.8% 감소했다. 이는 인쇄, 온라인, 옥외광고 같은 주요 매체 중 유일하게 역성장한 수치로, 총광고비 대비 방송광고 점유율은 17.0%까지 추락했다. 더 심각한 것은 방송 광고비가 올해 더 줄어들어 온라인 광고비의 3분의 1 이하로 쪼그라들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즉 추가 구조조정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러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선 디지털 전환에 따른 새로운 수익모델 발굴이 시급하다. 그중 EBS의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EBS는 구독 수익이 매년 30% 이상 성장하고 있고, AI와 멘토링, 전자책(e-book) 등 디지털 교육 사업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있다. 또 마른 수건을 짜는 방식으론 한계에 도달했다며 구조조정이 아닌 내부 구조개혁을 통해 비효율적 비용을 줄이겠다고 천명했다. 다른 미디어 기업들 역시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디지털 시대에 맞는 혁신적 수익 구조를 모색하고, 비용 효율화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저널리즘의 공공성과 경영 효율화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공영방송의 경우 수신료 등 공적 재원이 투입되는 만큼 시장 논리만으로 모든 것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 한편으론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 역시 필요하다. 미디어 산업의 공공성을 고려한 각종 규제 완화 및 지원 정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할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과제를 달성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글로벌 플랫폼의 영향력은 계속 커지고 있고, 젊은 세대의 전통 미디어 이탈도 가속화되고 있다. ‘골든타임’은 이미 지났다는 냉정한 분석도 나온다. 그럼에도 저널리즘의 가치를 지키며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혁신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한국 미디어의 미래는 없다. 지금 미디어 업계에 필요한 것은 단기적 생존을 넘어선 장기적 관점의 혁신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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