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이나 제품 홍보 차 낸 보도자료를 인용해 쓴 기사에도 익명 관계자 멘트가 나와 당황스러웠다.”
서울 주재 외신 기자의 이런 회고를 듣고 부끄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는 외신 특파원들의 눈에 가장 의아한 한국식 취재 관행이 두 가지 있다고 했다. 첫 번째는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기자단이고, 두 번째는 너무 흔한 익명 보도다. 그는 “공무원들도 너무 일상적으로 익명을 요청해 ‘습관적으로 익명을 요구하는 정부 부처 관계자에 따르면’이라고 기사에 쓴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이완수 동서대 교수의 문제의식은 외신 특파원의 지적과 맥이 닿아 있다. 우리 언론은 어떤 절차와 방법을 통해 누구에게 정보를 얻었는지 독자들에게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 요지다. 또, 반론을 듣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기사에 담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했다. 가뜩이나 정파성 탓에 독자의 불신을 사고 있는데 취재 과정조차 불투명하니 뉴스를 믿기 더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실명 보도 막는 ‘벽’
독자의 신뢰를 얻으려면 보도 과정이 투명해야 한다. 이 원칙에 토를 달 기자는 별로 없다. 그 첫걸음이 익명 보도를 줄이는 일일 테다. 익명을 원하는 취재원의 관성적 요구를 거리낌 없이 받아주는 기자가 주변에 적지 않다. 실토하자면 필자 또한 그렇다. 기자들끼리 간혹 자조한다. “도대체 기사에 등장하는 ‘핵심 관계자’와 ‘관계자’의 차이가 뭔지 모르겠다”는 푸념이다.
단단히 자리 잡은 익명 보도 관행에 균열을 내려면 그 원인부터 살펴야 한다. 익명 보도가 늘 악의적인 이유로 쓰이는 건 아니다. 정보원이나 취재 과정을 낱낱이 밝히기 어렵게 만드는 현실의 벽이 있다. 한국 사회만의 특수성도 존재한다.
취재·보도 과정에서 부딪히는 어려움을 이해하기 위해 국내 기자 세 명에게 의견을 물었다. 사회·정치·경제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해온 5~12년 차 기자들이다. 또, 주요 취재원인 중앙부처 공무원 한 명과 서울 주재 외신 특파원 두 명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국내 기자와 공무원은 솔직한 의견 제시를 위해 익명을 요구했다(익명 보도의 문제점을 다루는 글에서조차 실명 보도를 허락받지 못한 건 필자의 능력 부족 탓이다).
기자들이 맞닥뜨리는 첫 번째 벽은 양적 경쟁에 매몰된 보도 문화다. 취재원들은 보통 이름 노출을 꺼린다. 공무원과 기업인, 일반 시민 등 가릴 것 없다. 이름 석 자를 얻기까지 지난한 설득 과정이 필요하다. 12년 차 종합지 사회부 기자는 “하루에 기사를 최소 두세 개는 써야하는데 실명 보도를 허락받으려 하염없이 입씨름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통계도 현실을 보여준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21년 신문, 인터넷 언론, 통신사 등의 평기자 768명에게 일주일에 몇 건의 기사를 쓰는지 물었더니 평균 26.8건이라고 답했다. 주5일 근무한다고 가정하면 매일 5건 이상의 기사를 쓰는 셈이다.1)
온라인 속도전 탓에 마감 재촉이 심해진 것도 문제다. 필자가 언론사에 입사한 2000년대 후반만 해도 조간신문의 마감은 오후 4~6시쯤으로 한 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사를 수시로 온라인에 전송해야 한다. 출입처도 협조적이지 않다. 보도자료를 엠바고(보도 가능일) 당일에 주는 일이 흔하다. 또, 브리핑이 끝나면 발언의 사실 관계를 따져볼 틈 없이 기사 올리기 바쁘다. 저널리즘의 핵심 원칙이 쉽게 무너지는 이유다.
실명 보도와 취재원 보호 원칙이 충돌해 매 순간 갈등하는 기자들도 있다. 이 교수가 글에서 지적한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소식통이 말했다’ 등의 표현은 애매하기 짝이 없다. 실제로 부정확하거나 악의적 의도를 가진 보도의 방패막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다만 취재원과의 신의성실의 원칙을 지키려 어쩔 수 없이 모호함을 택할 때도 있다. 예컨대 ‘국방부 관계자에 따르면…’이라는 표현으로 부처 비판 기사를 썼다고 치자. 정보원으로 의심되는 공무원은 ‘보안조사(정보 보안을 지켰는지 확인하는 관가의 관행)’를 받게 된다. 용기를 내 조직 내 부조리를 알린 이가 회복하기 어려운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 기업 관계자도 사정은 비슷하다. 기자로선 취재원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좌절감에 빠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소식통’ 같은 흐릿한 표현을 선택하기도 한다.
취재원들은 왜 뉴스에 등장하는 것을 꺼릴까.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올까 봐 부담스럽다”는 이유를 든다. 한 중앙부처 공무원의 말이다.
“건조한 팩트라면 실명으로 나가도 된다. 하지만 정치적 해석의 여지가 있는 정권의 전략 사업 등을 이름 내놓고 설명하긴 겁난다. 정권이 바뀌면 책임져야 할 수도 있다. 정무직인 장관이라면 모르겠지만 실무자 입장에서는 쉽지 않다.”
일반 시민도 실명 인터뷰를 기피하는 추세다.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인터뷰할 때 이름과 나이, 거주 지역명을 물어보는 건 ‘취재의 기본’이었다. 한 가지라도 빠뜨리면 데스크가 “현장에 다시 가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실명 얻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자신의 말이 온라인 공간에 평생 ‘박제’되기 때문이다. 소신 발언을 했다가 커뮤니티에서 조리돌림 당하는 사례를 오죽 많이 봤겠는가. 기자들도 상황을 잘 안다. 이 때문에 실명을 달라고 설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우에노 미키히코(上野 実輝彦) 도쿄신문 서울지국장은 “일본 시민들도 과거보다 신상 밝히길 꺼린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 경향이 조금 더 짙은 것 같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의견 담긴 코멘트는 ‘익명 불가’
외신도 익명 보도를 한다. ‘Official(공무원)’ 같은 표현을 곧잘 쓴다. 취재원이 비실명 보도를 전제로 정보를 알려주는 ‘백브리핑’ 관행도 있다. 그럼에도 기본은 실명 보도며 취재 과정도 비교적 상세히 설명하려 노력한다. 결과 전달이 중요할 뿐 과정의 투명성은 부차적 문제로 치부해온 우리와 차이가 있다. 필자가 인터뷰한 2명의 외신 기자(우에노 지국장, 최상훈 뉴욕타임스 서울지국장)는 “한국 언론이 익명 보도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데 동의했다.
뉴욕타임스는 취재원 보호를 위해 불가피할 때만 익명을 허용한다. 최 지국장은 “정보 출처를 익명 처리하더라도 에디터에게는 정보원을 명확히 밝혀 사내에서 신뢰도를 중복 검증하도록 한다”고 전했다. 또, 명확한 사실 관계가 담긴 코멘트는 익명 보도할 수 있지만, 취재원의 주장 또는 의견이 담긴 발언은 이름을 감출 수 없다. 숨어서 여론을 움직이려는 시도를 막는 안전핀이다.
일본 언론 역시 실명 보도가 원칙이다. 우에노 지국장은 “언론의 사명 중 하나가 숨기고 싶은 부조리를 찾아 세상에 알리는 것인데 취재 과정을 숨기고 있다는 인상을 주면 독자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신문협회에서 만든 《실명과 보도》라는 가이드라인 성격의 소책자를 소개했다. 익명 보도가 퍼지는 이유를 짚고, 실명 보도가 필요한 이유 등을 담았다.
도쿄신문 편집국은 몇 년 전 “너무 서둘러 보도하지 말자”는 방침을 세웠다고 한다. 경쟁 매체보다 다소 늦더라도 팩트를 검증하는 데 시간을 더 들이자는 취지다. 궁극적으로 신문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향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투명성 위한 최소한의 ‘안전핀’
더는 미루기 어렵다. 과정의 투명성을 보여줘 독자 신뢰를 회복해야 할 때다. 다만, 익명 보도 관행 등은 사회 전반의 문화와도 연결돼 있기에 단박에 획기적 변화를 만들긴 어렵다. 그럼에도 뉴스룸 단위에서 또는 개별 기자들이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 해결책이 있다.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이 쓴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서 소개한 몇 가지 방법은 인상적이다. 예컨대 ‘오도한 취재원을 부지런히 드러내라’는 원칙은 당장 시도해볼 만하다. 출입처에서 만나는 취재원이나 제보자 중 자신의 의도대로 여론을 움직이려고 ‘언론 플레이’ 하는 이가 적지 않다. 은밀한 정보 제공자이기에 익명 보도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보도 이후에라도 이들이 언론을 의도적으로 기만한 사실이 드러난다면 취재원을 드러내자는 것이다. 익명성 뒤에 숨어 여론을 조종하려는 시도가 확연히 줄 수 있다고 본다.
또, 취재원의 이름을 밝힐 수 없다면 최대한 다양한 주변 정보라도 제공해야 한다.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인가를 독자가 직접 판단하게 돕자는 취지다. ‘한 소식통’이라는 표현 대신 취재원의 직위나 소속, 경력 등을 익명성을 깨지지 않는 범위에서 밝힌다면 독자들은 기사 내용을 조금이라도 더 믿을 것이다.
형식적 반론권 보장을 넘어서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사실 지면 매체의 경우 분량 제약 탓에 취재 과정이나 반론을 길게 싣기 어렵다. 하지만 온라인 공간에서는 원고량 제한이 덜 엄격하다. 이 교수가 제안한 바대로 반론권 보장과 사실 확인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했는지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뉴스룸 차원의 가이드라인 마련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실명 보도를 원칙으로 하되 예외적으로 익명 보도를 허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뉴스룸 차원의 지침이 있다면 기자들은 ‘A씨’라는 표현을 쓰기 전에 ‘과연 이게 최선일까’라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익명 보도를 선택하더라도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변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치 익명이 ‘기본값’이 된 듯한 보도 관행을 우리 스스로 한 번쯤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본다.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 되짚기’는 《신문과방송》이 좋은 저널리즘 연구회, 저널리즘클럽Q와 공동 기획하는 코너입니다.
1) 《2021 한국의 언론인》, 한국언론진흥재단, 86쪽, 2021.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