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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24-01-05
저널리즘의 꽃 탐사보도 미디어계의 ‘뉴비’ OTT를 만나다

저널리즘의 꽃 탐사보도 미디어계의 ‘뉴비’ OTT를 만나다

  • 저자 : 손용석
  • 발행일 : 2024-01-05

<악인취재기>는 JTBC 탐사보도팀과 OTT 웨이브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기존 뉴스의 틀을 깨는 화법과 영상으로 화제를 모은 이 프로그램은 후속작까지 방영되며 탐사보도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OTT까지 영역을 확장한 JTBC 탐사보도팀의 제작 후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언론사 보도국에서 탐사보도부는 유일하게 출입처가 없는 부서입니다. 출입처에서 매일 쏟아져 나오는 보도자료가 아닌 사건 뒤에 숨겨진 진실을 오랜 시간 쫓는다고 해서 ‘저널리즘의 꽃’으로도 불립니다. 문제는 언론사라도 피할 수 없는 ‘가성비’일 겁니다. 고연차 기자나 PD들도 매일 아이템에 허덕이며 한 달에 한 번은커녕, 1년에 한 번 히트작을 내기도 힘듭니다. 가끔 용기를 내 지원하는 저연차 기자들은 선배들 아이템만 지원하다 연말에 부서를 옮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언론사 상황이 안 좋을 때마다 가장 먼저 부침(浮沈)을 겪는 부서기도 합니다. 

 

사회부와 탐사팀을 전전하다 본격적으로 탐사보도부 데스크를 맡기 시작한 건 2016년 말부터입니다. 근성 있는 후배들의 열정으로 굵직한 보도들을 이어왔지만 아이템이 갑자기 뚝 끊기는 보릿고개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 발제된 아이템이 없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좋은 아이템이지만 탐사보도물로 나가기 애매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단독 취재로 발제된 내용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아이템은 제보자의 진정성이 의심되기 때문에, 어떤 아이템은 피해자의 신변 보호를 위해, 어떤 아이템은 방송용으로 적합하지 않아서. 길게는 몇 달을 끌고 온 취재를 접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데스크의 ‘칼질’로 난도된 후 살아남을 때도 있지만, 살아도 사는 게 아니겠죠. 이런 과정을 몇 번 되풀이 한 기자나 PD들은 취재 동력을 잃기 쉽고, 데스크는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더 빨리 아이템을 ‘킬’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괴물, <뉴스룸>으로 내보낼 순 없어 

 

2023년에는 그런 아이템들이 많았습니다. 동갑내기를 잔혹하게 살해한 정유정이 체포된 6월이었습니다. 경찰 체포 이후 드러나기 시작한 정유정의 범죄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당시 전국의 사회부 기자들이 관련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정유정을 취재해 온 후배로부터 정유정이 체포 당시 아버지와 나눈 통화 녹취 파일을 입수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살인자의 목소리. 단독 취재로 의기양양해야 할 후배가 “선배, 과연 이걸 내보낼 수 있을까요”라며 파일을 보내줬습니다. 밤늦은 시간 홀로 녹취 파일을 듣는데 제 예상과 전혀 다른 내용이 펼쳐졌습니다. 어린 시절 조부모에게 받은 트라우마를 아버지에게 내세우며 자신의 살인을 정당화하려는 정유정. 때로는 차분하게, 때로는 공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목소리는 가정 내 폭력과 사회의 방치가 만들어 낸 괴물임이 틀림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목소리를 온 가족이 모여 볼 수 있는 <뉴스룸>으로 내보내긴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자칫 정유정의 살해 동기에 서사를 부여하는 게 되지 않을까. 길어야 3분이 넘지 않을 방송 리포트에 1시간 넘는 녹취 파일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담을 수 있을까. 리포트로 맥락 없이 짧게 나간다면 오히려 정유정을 두둔해 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필리핀에서 한인 3명을 살해해 현지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박왕열이 ‘마약왕’으로 한국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것도 그 즈음이었습니다. 담당 PD의 집요함과 열정으로, 필리핀 교도소가 한국 강력범들의 도피처가 되고 있는 현실을 <뉴스룸>에 보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애초 목표로 했던 박왕열을 인터뷰하진 못했습니다. 계속해서 현지 취재원을 관리하고 필리핀 법무부에 문을 두드렸지만, 면회 허가조차 쉽게 받을 수 없었습니다. 언제 면회가 될지 기약 없는 상황에서 담당 PD에게 관련 취재를 계속 맡기며 필리핀을 오가게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 비용은 물론 기다려 줄 시간도 없었습니다. 

 

귀가하는 여성을 뒤따라가 발로 차 기절시키고 성폭력을 행사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뉴스룸>에선 피해자를 CCTV 사각지대로 끌고 간 가해자의 성폭행 의도를 최초 취재해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잔혹했던 현장 CCTV 장면을 여과 없이 보여줄 순 없었습니다. 해당 CCTV 영상을 보고 느꼈던 개인적인 생각은, 잔혹성과 선정성을 떠나 영상이 가해자의 살해 의도와 피해자의 2차 피해 공포를 여실히 보여주고,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직접적인 매개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피해자가 확보했던 검경 조사 CCTV 영상에서 드러난 가해자의 뻔뻔한 거짓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OTT로 전하는 현실의 매운맛

 

그래서 문을 두드린 게 바로 OTT 플랫폼 웨이브였습니다. 그동안 방송사에서 교양국이나 예능국이 OTT 플랫폼과 손잡고 오리지널 작품을 만든 경우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보도국이 OTT와 함께 프로그램을 제작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습니다. 보도국의 경우 PD보다는 기자들 위주의 조직이다 보니 체질적으로 롱폼보다는 숏폼 제작에 익숙합니다. 실제 뉴스룸이나 유튜브, 포털이 아닌 다른 플랫폼에 기사를 공급하는 것 자체를 낯설어하는 후배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부서엔 기존 탐사보도물을 취재·제작하던 PD들이 있었고, 부서 내부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었습니다. 기사의 소재가 되는 사건 현장은 갈수록 잔혹하고 선정적이 되고 있는데, 방송 뉴스는 여전히 ‘중학생 눈높이’를 요구하고 있는 현실 때문입니다. 정작 중학생들은 OTT의 ‘매운맛’에 익숙해지며 TV로부터 발을 돌리고 있는데 말이죠.

 

우리 부서에서 취재했던 한 사이비종교의 피해자 인터뷰도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 <뉴스룸>에선 피해자를 위해 모자이크에 음성변조를 하고, 인터뷰 내용도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은 최대한 제외해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몇 개월이 지나 OTT에서 다시 만난 그 피해자는 음성변조나 모자이크는커녕, 차마 방송에 담을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쏟아내며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습니다. 이를 제작했던 PD가 기자간담회에서 해당 프로그램의 선정적 장면과 묘사에 대해 이렇게 답한 것을 기사로 봤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언론이 이 사건을 다뤘는데, 어떻게 이 종교단체는 존재해왔을까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피해자가) 지금 한국 방송에 나온 게 처음이 아니다. JTBC 〈뉴스룸〉에 나온 적도 있는데 기억하는 분 있나?”1) 대중들의 공분을 일으키는 게 탐사보도의 최종 목적은 아니지만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대중들에게 최대한 가까이 가려는 시도는 지속돼야 한다는 필요성엔 공감했습니다.

 

 


 

 

사실 이는 비단 우리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래전부터 외국에선 플랫폼을 넘나드는 미디어들의 합종연횡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2016년 디지털 미디어 바이스(VICE)가 자사 뉴스 콘텐츠 <바이스 뉴스 투나잇(VICE NEWS TONIGHT)>을 미국 케이블TV HBO의 프라임 시간에 방송해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질적으로 보이는 두 미디어는 웰메이드 뉴스 콘텐츠의 수요와 공급에서 맞물리며 남다른 시너지를 나타냈습니다. ‘광고도, 앵커도 검열도 없다(no ads, no anchors, and no censors)’는 <바이스 뉴스 투나잇>의 철학이 HBO라는 플랫폼을 만나며 빛을 발한 겁니다. 

 

웨이브와의 논의는 일사천리로 이뤄졌고 곧바로 <악인취재기> 제작에 착수했습니다. 하지만 2분짜리 리포트 제작에 익숙한 보도국 시스템과 자원으로는 30분 넘는 OTT 제작물 시리즈를 만드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먼저 <악인취재기>라는 타이틀 때문에 대상을 선정하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내부에선 어지간한 악인이 아니면 명함도 내밀지 못하겠다는 토로까지 나왔습니다. 실제 취재를 하다가 악행들이 상대적으로 약해서 킬된 악인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편집도 원활하지 않았습니다. 숏품에 익숙하던 모바일 PD가 밤샘 편집에 나서고, 기자가 스튜디오에서 진행 PD가 되는 등 역할이 뒤죽박죽됐지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자는 목표를 향해 함께 달렸습니다. 결국 웨이브와 논의를 시작한 지 석 달도 안 된 2023년 9월 말 정유정 녹취 파일이 담긴 <악인취재기> 1편이 공개됐고, 11월 중순까지 6명의 악인을 다룬 총 9개의 에피소드가 방송됐습니다. 웨이브를 통해 확인한 반응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오픈과 동시에 웨이브 시사교양 장르 신규 유료 가입 견인 프로그램 1위를 기록했습니다. <부산 돌려차기> 편이나 <마약왕 박왕열>의 경우 대부분의 매체가 관련 내용을 추종 보도하며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에 힘입어 2023년 12월 중순부터는 희대의 사기꾼 전청조를 시작으로 <악인취재기; 사기공화국> 시리즈를 추가로 제작해 웨이브를 통해 방송하고 있습니다. 

 

탐사보도와 OTT…함께 갈 동반자

 

JTBC의 경우 OTT 제작을 통해 수익을 올렸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시청층도 넓혔습니다. <악인취재기> 시청자 대부분은 2040 젊은 시청층으로, 뉴스룸 시청층과도 사뭇 달랐습니다. 또 다른 성과도 있었습니다. 디지털 부문입니다. 웨이브와 사전 협의를 통해 <악인취재기>의 클립들을 JTBC 뉴스 유튜브 채널에 올렸는데, 대부분 조회수가 수십만 회에서 일부는 100만 회가 넘는 등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유튜브나 디지털에서 탐사보도를 소재로 한 미드폼도 먹힐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겁니다.

 

2023년 11월부터 JTBC 탐사보도부는 스튜디오 뉴비(Newbie)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풋내기를 뜻하는 뉴비에선 <악인취재기>뿐만 아니라 탐사팀 기자들과 PD들의 앵글이 담긴 다양한 시사 보도 교양물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올해 2월 웨이브를 통해 방송 예정인 LGBT 교양물 <모든패밀리>가 그중 하나입니다. 동성 부부로는 최초로 임신 사실을 공개한 김규진·김세연 부부의 출산·육아를 동행해 달라지는 현대적인 가족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예정입니다. 

 

뉴비에서도 탐사팀 기자들은 여전히 권력을 비판하고 시스템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를 비추는데 주력할 겁니다. 다만 <뉴스룸>도 탐사팀이 가진 여러 플랫폼 중 하나가 될 뿐입니다. <모든패밀리>의 출발도 올 초 <뉴스룸>이 내세운 어젠다 중 하나인 저출산 이슈였습니다. 저출산의 심각성을 취재하며 ‘이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점점 발전해 레즈비언 커플의 출산 육아기까지 이어졌습니다. 

 

앞서 언급한 바이스는 한때 수조 원의 가치를 평가받으며 ‘21세기 뉴미디어의 총아’로 불렸지만 최근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파산신청을 했습니다. 그만큼 한국은 물론 전 세계 미디어 중 누가 살아남을지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OTT를 비롯한 다양한 플랫폼들이 탐사보도의 무조건적인 해방구가 될 순 없겠지만, 적어도 함께 갈 동반자라는 건 부인할 수 없어 보입니다.

 

 

 

 

 

 

 

1) <MBC와 넷플릭스의 협업이 남긴 질문>, 시사IN, 2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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