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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24-06-03
3분도 길다,  쇼트 드라마의 ‘타이파 세대’ 접근법

3분도 길다, 쇼트 드라마의 ‘타이파 세대’ 접근법

  • 저자 : 김상진
  • 발행일 : 2024-06-03

“짧은 시간에 얼마나 강한 자극을 줄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일본에서도 스마트폰으로 보는 짧은 길이의 세로 동영상 ‘숏폼(short-form)’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이런 말이 미디어 업계의 불문율이 돼가고 있다. Z세대(1990년대 후반~2000년대 출생)를 사로잡기 위한 스마트폰용 영상 콘텐츠 경쟁이 점차 격렬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요사이 가장 뜨거운 부문은 드라마다. 1회 시청 시간이 3분 정도인 ‘쇼트 드라마’를 서비스하는 어플리케이션(앱) ‘범프(BUMP)’의 성장세가 단연 눈에 띈다. 2022년 12월 출시 이후 앱 다운로드 건수가 100만(5월 초 기준)에 이른다. 올해 들어서만 50만 다운로드를 달성했을 정도다.

 

시간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 4월부터 회당 분량이 60~90초인 드라마가 유통되기 시작했다. 완결편까지 58회, 모두 합치면 90분 정도 스토리가 이어지는 게 특징이다. 

 

이미 중국에서 성공한 모델을 동영상 스타트업 GOKKO가 일본 시장에 선보인 것이다. 중국 원작을 일본식으로 각색한 드라마 60편이 먼저 공개된 상태다. 


‘시성비’ 중시하는 Z세대

 

일본 미디어 업계에선 Z세대의 미디어 소비 행태를 규정하는 특징으로 ‘타이파(タイパ)’를 꼽는다. 타이파는 시간 대비 성과(time performance), 이른바 ‘시성비(時性比)’를 뜻하는 신조어다. 단시간에 높은 효과나 만족도를 얻을 수 있는 것을 ‘타이파가 좋다(또는 높다)’고 흔히 표현한다. Z세대가 이전 세대와 달리 유독 시간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스마트폰 이용 시간이 앞선 세대보다 훨씬 많다. 잠든 시간만 빼곤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않을 정도로 각종 소셜미디어와 앱에서 쏟아져 나오는 콘텐츠와 게시물을 확인하기 바쁘다. 그만큼 시간에 대한 심리적인 장벽이 높다는 의미다. 

 

이런 심리를 포착해 일찌감치 대박을 터뜨린 게 바로 웹툰이다. 웹툰은 스마트폰의 세로 화면에 맞춰 스크롤 하면서 읽을 수 있는 형식을 잘 정착시켰다. 또 한 편씩 구매할 수 있고, 짧은 시간에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도 타이파를 중시하는 Z세대 입장에선 매력적이다. 

 

일본의 쇼트 드라마는 이런 웹툰의 성공 전략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범프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에모루(emole)의 사와무라 나오미치(澤村直道) CEO는 지난해 12월 닛케이 크로스 트렌드와 인터뷰에서 “요즘 젊은이들은 재미있을지 아닐지 확신이 들지 않는 (회당) 1~2시간 길이의 드라마를 시청하는 건 타이파가 나빠 저항감을 갖고 있다”며 “웹툰처럼 한 편을 짧은 시간에 즐길 수 있다면 심리적인 장벽이 훨씬 낮아질 것이라고 생각해 (범프 사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첫 편에 결론 담아 ‘정주행’ 유도 

 

쇼트 드라마의 작법은 색다르다. 시청자가 마지막 편까지 ‘정주행’하길 바란다면 첫 편에서 승부를 걸어야만 한다. TV 드라마와 같은 ‘기승전결’식 서사는 절대 금물, 주인공이 뭘 원하는지 바로 보여줘야 한다. 한마디로 결론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사와무라 CEO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장편 드라마에선 처음에 주인공의 배경 등을 자세히 묘사해 나가지만, 초단편 드라마의 경우 첫 편에서 배경 설명만으로 끝나면 시청자가 지루해서 금방 이탈해 버린다. 중요한 건, 처음부터 달성해야 할 목표(결론)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알게 된 시청자는 목표를 향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을 응원하게 되고, 최종화까지 시청할 확률이 높아진다.” 

 

범프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오늘도 바람 드는, 당신은 불타오른다>는 이런 작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불륜이 소재인데, 첫 편 도입부에서 남편의 외도를 의심한 주부가 남편이 불륜녀와 차량에 탑승하기 전 뒷자리에 숨어 흐느끼는 장면부터 보여준다. ‘아내가 불륜을 폭로하고 복수한다’는 결말을 미리 내다보게 하는 셈이다. 결국 시청자는 주인공이 어떤 식으로 남편의 악행을 찾아내 처벌하는지를 보기 위해 ‘다음 편’ 버튼을 계속 누를 수밖에 없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또 하나의 포인트는 짧은 시간 안에 자극적인 ‘복선’을 심는 것이다. 언급한 드라마에선 무심코 여성용 화장품 종류를 입 밖에 내는 남편의 수상한 언행, 불륜 현장을 촬영하기 위해 술집 앞에서 대기하다가 불륜녀의 남자친구와 만나는 장면 등이 각 에피소드마다 등장한다.


SNS 닮은 앱 기능과 ‘종량제’ 요금

 

Z세대를 사로잡기 위한 수단은 또 있다. 인스타그램 등 SNS가 일상인 Z세대는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표출하기를 원한다. 범프의 경우, 이런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드라마의 각 장면마다 댓글을 달 수 있는 기능을 앱에 넣었다. 인상 깊은 장면에 대한 다른 시청자의 댓글(의견)을 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추가하는 식이다. 

 

또 하나, 드라마 장면 중 결말을 포함한 15초 분량의 영상을 SNS에 자유롭게 게시할 수 있는 기능도 있다. 이는 결말을 알고도 취향에만 맞으면 1화부터 끝까지 시청하는 ‘네타바레(ネタバレ·스포일러) 소비’를 겨냥한 것이다. 그만큼 인플루언서의 영향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쇼트 드라마는 유료 과금 방식도 웹툰을 닮았다. 넷플릭스와 같은 OTT처럼 정기구독 형태의 ‘월액제’가 아닌 편당 과금 방식인 ‘종량제’를 채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범프의 경우, 편당 요금은 67엔(약 583원)이다. 첫 3~4화는 무료로 시청할 수 있는데, 시청 후 23시간이 지나거나 하루 3회 광고를 보면 다음 편 무료 시청이 가능하다. 대기 시간이나 광고 시청을 피하기 위해선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이러한 과금 방식은 제작사와 크리에이터, 출연자에게 꾸준히 수익이 돌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유리하다고 한다. 가령 유튜브에선 100만 조회 수를 달성해도 실제 수익은 수십만 엔(수백만 원) 수준에 그치는데, 이 경우 최소 수백만 엔(수천만 원)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쇼트 드라마의 특성상 지속적인 작품 생산을 기대하기 어렵다. 작품이 히트할수록 수익이 크게 늘어나는 구조여야만 양질의 콘텐츠가 계속 나온다는 게 범프 운영사의 판단이다.


한국을 ‘테스트베드’로 세계시장 공략

 

일본의 쇼트 드라마 업체들은 해외 진출에 성공한 중국 모델도 눈여겨보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발달로 다양한 외국어 자막 기능을 손쉽게 추가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일례로 중국의 쇼트 드라마 플랫폼인 ‘릴쇼트(ReelShort)’는 영어판 이외에 인도네시아어·태국어·스페인어·독일어·포르투갈어 등의 자막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중국의 글로벌 시장 조사 업체인 YH리서치에 따르면 쇼트 드라마(세로형)의 세계 시장 규모는 2029년이면 566억 달러(약 77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약 55억 달러(약 7조 5,000억 원) 수준에서 10배 넘게 커진다는 것이다. 

 

범프의 경우 비교적 일본 드라마에 익숙한 한국의 젊은 층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지난 5월 한국판 앱을 출시하고,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5편을 먼저 공개했다. 한국 제작사와 드라마를 공동 제작해 한일 양국에서 유통할 구상도 갖고 있다. 

 

 

범프 어플리케이션 소개 화면<출처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com.emole.bump&hl=en_US>;

 

 

이처럼 일본 쇼트 드라마 업체 입장에서 한국시장은 일종의 테스트베드(testbed)다. 이를 발판으로 영어판과 중국어판으로 확장하겠단 계획이다. 이와 관련, 사와무라 CEO는 “초기엔 자막 기능을 탑재하고 인기작의 경우 외국어 더빙도 진행할 것”이라며 “일본발 드라마를 전  세계에 판매할 것”이란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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