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일2024-12-06
영화가 아닌 현실 국제화된 리딩방 범죄 실태를 파헤치다

영화가 아닌 현실 국제화된 리딩방 범죄 실태를 파헤치다

  • 저자 : 최인영
  • 발행일 : 2024-12-06

리딩방 사기 피해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KBS는 캄보디아의 리딩방 사기 조직에 한국인이 가담했다는 제보를 받고 현지 취재를 진행했다. 국제 경제 범죄를 넘어 ‘납치 감금’까지 일삼는 강력 범죄를 고발한 취재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주식 리딩방 업체에 잠입해 있으니 도와달라.”

 

지난 3월, 눈에 띄는 메일 한 통이 왔습니다. 불법 주식 투자 리딩방 피해에 관한 제보 메일은 지난해부터 수도 없이 받아왔습니다. 적게는 수백만 원, 많게는 수억 원까지 사기를 당한 피해자를 만났습니다. 여러 차례 그들의 상황을 보도하고, 예방법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바뀌는 건 없었습니다. 리딩방 사기 피해 금액은 늘어만 갔습니다. 그들의 피해는 더 이상 ‘뉴스’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 메일은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여의도 한 카페에서 제보자를 만났습니다. 제보자는 이렇다 할 설명 없이 곧장 USB 한 개를 건넸습니다. 파일을 열어보니, 리딩방 사기 조직 운영에 관한 모든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피해자들의 신상 정보부터 피해 금액, 그들이 사기 범행에 사용하는 중국어 대본까지. 그야말로 ‘내부 자료’였습니다. 제보자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고민도 많아졌습니다. ‘이 엄청난 자료를 감당할 수 있을까, 어떤 방식으로 보도해야 효과적일까….’ 

 

우선 자료를 선배들과 공유한 뒤, 진위를 검증하기 시작했습니다. 내부 자료에서 조직원들이 사칭했다는 투자회사 이름과 피해자들에게 권유한 투자 프로젝트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실제로 피해자와 대화를 나눴다는 내부 담당자들의 온라인 닉네임도 추려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사기 피해자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와 담당 변호사들을 통해 피해 사례를 모았습니다. ‘제프리스’ 투자회사의 ‘허리케인’ 프로젝트에 사기를 당했다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그렇게 피해자 한명 한명에게 직접 연락을 돌렸습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중장년층이었습니다. 조직에 뜯긴 돈은 그들의 노후 자금이었습니다. 피해자들은 이미 몸과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였습니다. “제발 조직을 잡아 벌을 받게 해달라, 내 돈을 찾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말했습니다.

 


한국인 ‘바글바글’한 ‘리딩방 조직 거점’ 현장

 

제보자는 조직의 ‘조폭식 운영’ 방식에 대해서도 증언했습니다. 캄보디아에 있는 중국인 총책 밑에서 사실상 감금 당했었다고 전했습니다. 캄보디아에는 리딩방 사기 조직에 가담한 수많은 한국인이 있다고도 했습니다.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였습니다. 

 

취재팀은 캄보디아 현지 취재를 결정했습니다. 조직의 실체를 밝혀내, 더 이상의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렇게 조직의 거점에 방문해 카메라로 그곳의 실태를 담아오기로 했습니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안전이었습니다. 전기충격기와 총으로 무장한 조직원들이 있단 얘기가 들렸습니다. 현지 교민들은 캄보디아의 범죄 조직이 부패한 군인, 경찰과 한패라고도 말하기도 했습니다. 

 

취재팀이 잠입 취재를 한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취재팀은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DSLR 카메라를 목에 건 여행객 차림으로 캄보디아에 입국했습니다.

 

알고 있는 정보는 조직 거점 건물의 주소가 전부였습니다. 선팅이 짙게 된 승합차를 타고 무작정 그 앞에서 잠복을 시작했습니다. 몇 시간을 기다리자 한국어가 들렸습니다. 출입증을 목에 건 한국인 청년들은 간식을 양손 가득 사 들고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간식의 양으로 봤을 때 더 많은 사람이 있겠다 싶었습니다.

 

위험하지만, 내부 진입을 결정했습니다. 건장한 남성들이 입구를 가로막았습니다. 현지 코디가 “임대를 알아보러 왔다”고 하자 입장을 허락했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그대로였습니다. 건물 안에는 많은 한국인 청년이 있었습니다. 내부에는 식당과 매점, 운동시설까지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시설도 있었습니다. 침착하게 조직 거점 건물의 내부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이후 건물 주변을 탐문했습니다. 편의점, 버블티 가게, 한식당, 병원 등에 가서 조심스레 이곳에서 일하는 한국인의 존재를 아는지 물었습니다. 낯선 도시에서 한국인 청년들의 존재는 이미 공공연했습니다. 

 

취재팀은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 내용을 바탕으로 조직 운영 실태를 고발했습니다. 한국인 조직원들은 중국인 총책이 마련해 놓은 공간에 모여, 그의 지시에 따라 한국인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영화에서나 보던 중국인 사기 조직의 실체가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캄보디아 범죄 조직은 아예 ‘범죄 단지’를 차려놓고 사기를 벌였다. 그중 하나인 ‘원구단지’에서 나온 무장 경비 ⓒKBS

 


‘범죄 단지’ 드러낸 피해 제보

 

지난 8월 보도 이후, 제보가 쏟아졌습니다. 규모가 훨씬 더 크고, 더 많은 조직이 캄보디아에서 사기 범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예 ‘범죄 단지’를 차려놓고 사기를 벌인다고 했습니다. 취업 사기로 단지 안에 끌려가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범죄 단지 내부에서 촬영됐다는 ‘전기 고문’ 영상도 있었습니다. 중국인들은 범죄 단지를 차려두고, 사기 범죄에 사용할 대포통장을 모집하기 위해 한국인을 끌어들이고 있었습니다. 고수익 아르바이트나 사업 미팅을 핑계로 피해자들을 캄보디아에 입국시킨 뒤, 폭행과 협박을 하면서 통장을 빼앗는 일이 많았습니다. 통장을 제공하지 않으면, 범죄 단지에 가두고 강제로 일을 시키기까지 했다는 증언이 쏟아졌습니다.

 

취재팀은 제보 내용을 정리하며 범죄 단지 위치를 특정했습니다. 제보자와 접촉하고 있던 국가정보원 요원과도 연락이 닿았습니다. 국정원에서도 이런 범죄 단지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취재팀이 파악한 위치와 중복되는 주소가 3곳이나 됐습니다. 취재팀은 다시 한번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신분이 알려져도 감행한 취재 

 

지난번 보도로 취재팀의 얼굴이 알려진 상황이었습니다. 안전을 위해 동행 취재가 가능한 현지 경찰을 어렵게 섭외했습니다. 우리 대사관에도 취재 중인 사실을 알려 비상 상황에 대비했습니다. 그렇게 선팅이 짙게 된 승합차를 타고 범죄 단지로 향했습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원구단지’였습니다. 단지는 담벼락에 둘러싸여 있었고, 무장 경비가 출입구를 통제했습니다. 곳곳엔 CCTV가 설치돼 있었습니다. 원구단지는 다른 단지들보다 그나마 프놈펜 시내와 가까운 곳이었고, 주변엔 유동인구도 꽤 있었습니다. 차에서 내려서 취재할 수 있는 곳은 여기뿐이겠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걸어서 단지 주변을 카메라에 담던 중, 무전 소리가 들리면서 철문이 열렸습니다. 경비들이 CCTV로 취재팀의 모습을 발견했던 겁니다. 듣던 대로 감시가 삼엄하구나 싶어 안전에 더 유의하며 취재를 진행했습니다.

 

이후 찾은 ‘태자단지’와 ‘망고단지’ 역시 높은 담벼락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외부에선 단지 내부 모습을 정확히 확인할 수 없어 단지에서 1km 정도 떨어진 농가의 허락을 받고 마당에서 드론을 띄웠습니다. 그렇게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단지 내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취재팀이 접촉한 납치 피해자들은 모두 “프놈펜 공항에서 조직원과 함께 승합차를 타고 이동했다”고 했습니다. 실제 납치가 이뤄지는지 확인하기 위해 공항에서 잠복했습니다. 3일 동안 인천발 항공기가 도착하는 시간마다 다섯 차례에 걸쳐 잠복 취재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드넓은 공항에서, 한국인을 마중 나온 조직원들을 촬영하긴 쉽지 않았습니다.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태자단지’ ⓒKBS 

 

 

잠복 취재 3일째 밤, 승합차를 끌고 온 한 외국인이 한국인과 ‘인증샷’을 찍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조직원들이 함께 찍은 사진을 조직에 보냈다는 제보자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 승합차를 추격했습니다. 10분 정도 따라가자, 공항 인근의 수상한 고층 건물에 차가 멈춰 섰습니다. 취재진이 접촉하고 있던 피해자들에게 확인해 보니, 운전자는 ‘태자단지’의 조직원이라는 진술이 나왔습니다. 다음날 다시 가보니 차는 없었습니다. 현지 경찰은 조직원의 이름도, 뚜렷한 납치 증거도 없다며 신고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취재팀은 우리 대사관에 관련 정보를 알리고 촬영본을 공유했습니다.


국제화된 ‘범죄 도시’ 보도 이후 국제 공조로 해결 노력

 

취재팀은 캄보디아 현지와 국내에서 취재한 내용을 정리해 범죄 단지 실태를 보도했습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습니다. 보도 직후인 10월 24일 캄보디아 총리는 범죄 단지 수사를 명령했고, 현지 경찰청장은 보도된 곳 중 하나인 망고단지를 급습해 조직원 등 1,000명을 체포해 조사했습니다. 캄보디아 정부는 우리 대사관과 긴밀히 협조해 KBS가 다룬 한국인 납치 문제를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국정감사에 출석한 경찰청장은 국가수사본부장을 급파해 현지 정부와 한국인 납치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외교부 역시 현지 정부와 협조해 문제를 풀어나가겠다고 했습니다. 보도 이후 한국인 납치 문제는 우리 정부와 캄보디아 정부가 풀어나가야 할 ‘외교 현안’이 됐습니다.

 

최근 11개월 동안 국내 리딩방 사기 피해액은 경찰에 신고된 것만 5,400억 원입니다. 이중 피해자 상당수는 캄보디아 등 해외 조직이 건 전화와 메시지를 받고 사기의 덫에 걸려들었습니다. 캄보디아에 자리 잡은 중국 조직은 젊은 한국인을 조직원으로 끌어들이고 있었습니다. 범죄에 사용될 대포통장을 모집하기 위해 한국인을 납치해 고문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올해 8월까지 주캄보디아 대사관에 접수된 한국인 취업 사기 및 감금 신고 건수는 86건, 피해자 수는 105명에 달할 정도로 현지에서 한국인 납치는 흔한 일입니다. 

 

 

캄보디아 투자 리딩방 사기 조직의 거점 ⓒKBS

 

 

이제 ‘리딩방 사기’와 같은 경제 범죄와 ‘납치·감금’과 같은 강력 범죄는 국경을 뛰어넘어 일어나고 있습니다. 범죄 조직은 부패한 정부가 있는 동남아 등지로 숨어, 한국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국제 공조가 원활히 이뤄져야 합니다. 

 

취재팀이 이번 보도를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한 명의 피해자라도 막아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내부 자료를 바탕으로 인터랙티브 기사1)를 만든 이유기도 합니다. 조직의 사기 수법을 널리 알린다면, 피해를 조금이라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투자 리딩방 사기, 취업 사기에 당했다’는 제보를 더 이상 받지 않는 날이 오길 바라봅니다.

 

 

 

 

 

1) https://news.kbs.co.kr/special/cambodia/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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