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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23-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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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관련 보도 시 알아야할 것: 빛나는 호칭에 드리운 비판의 그림자, 기사(knight) 제도

  • 저자 : 엄새린
  • 발행일 : 2023-08-10

최근 영국에서는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 전 총리의 기사 작위 수여에 관한 스캔들이 있었다.1) 영국에서는 총리가 기사 작위(knighthood) 수여자를 선정할 수 있는데, 보리스 존슨이 같은 당 후임 총리인 리시 수낵(Rishi Sunak)에게 본인의 아버지에게 기사 작위를 주라고 압박을 가했다는 것이다.2) 존슨 전 총리는 자신의 아버지인 스탠리 존슨(Stanley Johnson)이 환경 분야에 큰 업적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한편, 이 사안을 통해 현존하는 영국의 기사 제도와 그에 대한 비판이 영국 사회에서 다시 한번 논의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영국의 기사 제도의 기원과 현대적 의미, 귀족 의회와 그 역할 및 비판에 대해 논의해 보려고 한다. 


기사 제도의 기원과 현대적 의미

 

11세기 무렵 등장한 영국의 기사는 원래 왕 혹은 지역 영주들을 보호하는 군사 계층이었다. 당시부터 기사 대부분은 귀족 출신이었으며 명예·충성·예의와 같은 덕목 또한 지켜야 했기 때문에, 사회적 명성을 가졌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전투보다 오히려 정의 실천 등 정신적인 면이 강조되며 명예로운 계층을 상징하는 개념으로 진화했다. 현대 영국 사회에서 기사 제도는 국왕이 수여하는 권위 있는 영예로, 국가에 큰 공헌을 한 개인을 인정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 공헌에는 군사적 공헌, 공공 복무, 다양한 분야에서의 뛰어난 업적 등이 포함된다.

 

기사 정신의 현대적 중요성을 보여주는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예는 ‘귀족원’ 혹은 ‘귀족 의회(House of Lords)’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귀족 의회는 ‘평민 의회(House of Commons)’와 함께 형식적으로는 영국에 존재하는 두 개 의회 중 하나다. 귀족 의회는 민주주의의 원칙과 상관없이 성공회 주교 등 주요 종교인, 귀족 혹은 기사들로 구성돼 있으며, 절차상으로는 평민 의회에서 제안된 법률을 검토하고 수정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들이 평민 의회에서 통과된 법안을 검토·조사한 후 수정안을 제안하고 토론한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귀족 의회의 권한과 기능은 1999년에 이뤄진 개혁 이후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 순서상으로는 평민 의회에서 통과된 법안이 귀족 의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결정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현재 영국의 제도 안에서 이 귀족 의회는 최종적인 결정 권한이 없으며, 평민 의회와의 이견이 있을 경우 일반적으로 평민 의회의 결정을 따른다. 따라서 귀족 의회는 영국의 제도 안에서 제한된 권력을 가지며, 그나마 남아있는 현재의 기능과 역할 역시 여전히 논쟁과 토론의 대상이다.3)

 

한국에서는 이 귀족 의회를 흔히 ‘상원’이라고도 번역하는데 이는 마치 사립학교(public school)와 중산층(middle class)처럼 영국 사회를 이해하지 못한 대표적인 오역 사례라고 할 수 있다.4) 한국에서 영국의 귀족 의회를 상원, 평민 의회를 하원으로 번역하는 것은 아무래도 미국 의회 제도(The Senate and the House of Representatives)에서 차용한 개념으로 짐작되는데, 사실 이 두 나라의 시스템은 여러 가지 면에서 구조적 차이가 있다. 먼저 미국의 상원의원은 인원수나 임기에 있어 민주주의 원칙을 따르지만, 영국의 귀족 의회는 민주주의 대표성과 상관없는 특수 계층의 임기 없는 평생직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또한, 미국 상원은 법안 제출, 수정 및 승인에 대한 권한을 갖지만,5) 영국의 귀족 의회는 앞에서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실상 형식적인 역할을 하고 있을 뿐 큰 권한이 없다. 때문에 영국의 귀족 의회와 평민 의회를 상·하원으로 번역하는 것은 미국 문화가 지배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볼 때 오해의 소지가 많으므로 귀족원 혹은 귀족 의회, 평민원 혹은 평민 의회라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귀족 의회 내에는 가터 기사단(Order of the Garter)이라고 알려진 독특한 기사단이 존재한다. 14세기에 설립된 가터 기사단은 귀족 의회 내의 독립적인 기사단으로, 공공 이익에 크게 기여한 개인들을 인정하는 명예 기사단이다.6) 가터 기사단의 회원 자격은 정치적 임명이나 상속적 권리에 기반하지 않으며, 영국의 군주가 부여한다. 가터 기사단의 구성원은 기사와 그 배우자인데 이들은 뛰어난 업적과 도덕성, 명예, 공공 이익에 대한 헌신을 맹세한다.


기사 제도 전반에 대한 비판

 

이처럼 현존하는 독특한 기사 제도는 영국 사회 내에서도 엘리트주의와 성차별 문제 등의 면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7) 사실 기사 정신이라는 것은 특권을 가진 소수의 권력과 영향력을 지속시킨 계급사회를 유지하는 데 일조했다고 볼 수도 있다. 기사 제도는 귀족 가문에 태어난 사람을 우대해 사회적 불평등을 강화하고 일반인의 신분 상승 기회를 제한했다. 여왕이나 왕에게 후천적으로 기사 작위를 부여받은 사람은 마치 한국의 대통령 훈장처럼 그들의 업적 덕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역시 결정 과정에서 얼마나 공정성과 포용성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때문에 이러한 기사단 제도는 기존 권력을 강화하는 사회적 차별의 한 형태로 볼 수도 있다. 또한, 기사 정신의 남성 중심성은 능력 있는 여성이 유사한 사회적·군사적·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배제한다는 점에서 비판받아왔다.8) 다시 말하자면 기사 정신은 전통적으로 여성을 제외하며 성차별을 강화했다. 여성은 여인 기사(영예 여인)의 칭호를 받을 수 있지만, ‘경(Sir)’이라는 칭호는 오직 남성에게만 사용된다. 

 

이에 대한 영국 미디어의 시각은 다양하다. 먼저, 영국에서 기사 작위를 받는 것은 뛰어난 업적과 사회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은 명예로운 일로 간주된다. 따라서 미디어는 이러한 명예를 얻은 개인의 성과와 영향력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종종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 과학, 자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명예 기사 작위를 받은 사람들에 대해 크게 보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두 번째, 기사 정신 관련 논쟁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토론 보도도 있다. 이는 앞에서 논의한 시스템의 실효성과 공정성, 상속된 칭호와 연관된 엘리트주의, 여성들이 기사 정신에서 제외되는 역사적 편견 등에 대한 논의도 포함된다. 미디어 매체는 종종 전문가, 해설가, 옹호자들이 이러한 문제에 대한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공론장을 제공한다.9)

 

마지막으로 사설 혹은 비판 프로그램 등에 출연한 일부 미디어 해설가들은 기사 정신과 현대 사회의 관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들은 형식적인 기사 제도가 구습이며 과거의 유물일 뿐, 현대 사회에서는 실질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기사 호칭 사용에 대한 미디어의 최근 경향

 

이 때문에 몇몇 유명인은 기사 작위를 거부하기도 했다. 일례로 영국의 전설적인 음악가이자 배우인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는 2000년에 기사 작위 수여를 거절하면서, 기사 정신을 믿지도 않고 기사 지위에 속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영국인이 사랑하는 동화작가인 로알드 달(Roald Dahl)도 두 차례에 걸쳐 기사 작위 수여를 거절했다. 그는 영국의 기존 체제에 대한 강한 혐오와 개인으로서의 독립성 유지 욕구 때문에 거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전설적인 영국 밴드 비틀스(The Beatles)의 멤버인 존 레넌(John Lennon)도 1969년에 영국 제국 훈장(MBE) 메달을 반납하면서 영국 정부의 다양한 국제 갈등에 대해 항의했다. 마지막 예로, 아카데미상 수상 경력을 가진 영국 영화 감독인 대니 보일(Danny Boyle)은 2013년 기사 작위 수여를 거절하면서, 제의는 감사하지만 예술가는 반항적이어야 하며, 체제의 일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기사 작위를 거절하는 이유는 신념, 원칙 또는 정치적 견해 등으로 다양하다. 이렇듯 영국에서 큰 업적을 쌓은 인물들이 기사 작위를 모두 명예롭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10) 오히려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으며, 그 시각을 표현하고자 하는 인물도 있다.

 

한국의 대통령 훈장과 영국의 기사 작위는 국가를 위해 큰 공로를 쌓은 인물에게 수여된다는 점에서 비슷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영국에서 기사 작위 및 명예훈장을 받으면 그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달라지며, 그에 따른 사회적 인정도 달라진다는 점에서 큰 차이점이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의 가수 엘튼 존(Elton John)은 1998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는데, 그 후 그의 명칭은 엘튼 존 경(Sir Elton John)이 됐다. 그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달라지기 때문에 기사로 인정이 되기 전과 후의 사회적 영향력 변화는 한국의 대통령 훈장에 비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이와 같은 호칭 역시 구태적인 관습이며, 현대 사회 평등성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특히 언론에서 경(Sir)과 여자 기사(Dame) 같은 호칭을 붙이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논란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계급과도 같은 이런 호칭을 이름 앞에 붙이는 것은 미디어가 보다 긴급한 다른 사회문제를 주목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기사 정신과 결부된 지위와 명예를 강조하느라 사회적 불평등, 체계적 불의, 포용성에 관한 중요한 논의를 지나칠 수 있어서다.

 

때문에 일부 보수 언론을 제외하면, 나머지 언론들은 관련 인물 보도 시 기사 작위를 굳이 붙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엘튼 존을 보도하면서 ‘엘튼 존 경’이라고 호칭을 붙이는 것은 대표적인 보수신문인 텔레그래프(Telegraph)지 정도며, 진보 일간지인 가디언(Guardian)이나 중도를 자처하는 BBC 방송사도 엘튼 존 혹은 존으로 표기해왔다. 다만 예외적으로, 올해 72세인 엘튼 존의 은퇴 공연 보도를 기점으로 많은 언론사가 일제히 엘튼 존 경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11)12) 이는 영국을 대표하는 원로 가수의 52년 활동 정리를 보도하며 언론사가 예의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한국 언론에서 영국 문헌이나 기사를 받아쓰면서 굳이 기사 호칭을 붙이는 것은 사실상 과잉 의전에 해당된다. 영국 내에서도 구습이라 비판받고 있으며, 일부 언론을 제외하고는 지양하는 호칭을 굳이 타국의 언론이 붙여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특별한 공로를 인정받아 후천적으로 수여된 기사 작위는 후손에게 상속될 수 없다. 선천적 귀족의 후손이 받은 기사 작위(hereditary knight)와는 또 다른 개념인 것이다. 선천적 귀족의 작위 상속에도 제한이 있는데, 1958년의 귀족법(Peerage Act)에 의해 호칭 상속에 일부 제한을 뒀고, 1999년에는 귀족의회법(House of Lords)이 통과돼 상속 귀족의 권리였던 귀족 의회 진입을 일부 제한했다.13)14)

 

영국의 기사 제도는 영국 사회에서 엘리트주의와 성차별 문제 등으로 크게 비판받고 있다. 기사 작위 수여는 특정 소수가 권력과 영향력을 갖는 계급 사회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며, 기사 작위는 주로 남성 중심적이며 여성은 제외되는 경향이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영국의 일부 언론을 제외하면, 대부분 언론들은 기사 호칭을 굳이 붙이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영국의 기사 제도와 그 실효성에 대한 더 많은 논의와 혁신이 요구되는 추세다. 

 

 

 

 

1) Mason, R., <The mystery of Boris Johnson's honours list: why is Sunak putting up with it?>, The Guardian, 2023.6.9, https://www.theguardian.com/politics/2023/jun/09/the-mysteryof-boris-johnsons-honours-list-why-issunak-putting-up-with-it

2) Walker, P. & Stacey, K., <‘Ridiculous’: oppone nts pour scor n on Bor is Johnson's plan to Knight his father>, The Guardian, 2023.3.6, https://www.theguardian.com/politics/2023/mar/05/boris-johnson-nominates-father-for-aknighthood

3) KELSO, A., <Stages and Muddles: T he House of Lords Act 1999>, Parliamentary History, 30(1), pp.101-113, 2011.1.24, https://doi.org/10.1111/j.1750-0206.2010.00238.x

4) 영국에서 퍼블릭 스쿨(public school)은 공립학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명문 사립학교를 의미한다. 또한, 미들 클래스(middle class)는 

사회 중간계층이 아니라 사실상 상류층을 의미하기 때문에 문화적 맥락을 모르고 직역할 때는 소통의 장애가 올 수 있다. 

5) Polsby, N., <The Institutionalization of the U.S. House of Representatives>,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62(1), pp.144-168, 1968

6) Waddington, R. B., <Elizabeth I and the Order of the Garter>, The sixteenth century journal, pp.97-113, 1993

7) Gottfried, H., <Beyond patriarchy? T h e o r i s i n g g e n d e r a n d c l a s s >, Sociology, 32(3), pp.451-468, 1998

8) Crocker, H., <W(h)ither Feminism? Gender, Subjectivity, and Chaucer's Knight's Tale>, The Chaucer Review, 54(3), pp.352-370, 2019 

9) Harper, T., 《From Servants of the Empire to Everyday Heroes-The British Honours System in the Twentieth Century》, Oxford University Press, 2020

10) 물론 기사 작위 선정자 대부분은 수여를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최근 거절하는 비율이 증가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2%에 지나지 않는

다. Busby, M., <Number of people rejecting Queen’s honours doubles in past decade>, The Guardian, 2020.12.1, https://www.theguardian.com/politics/2020/dec/01/number-of-people-rejecting-queenshonours-doubles-in-past-decade

11) Roper, K. & Burrell, M.,, <Emotional Sir Elton John performs ‘last show ever in England’ at Glastonbury Festival>, Evening Standard, 2023.6.26, https://www.standard.co.uk/news/uk/glastonbury-fetival-elton-john-blondielil-nas-x-emily-eavis-b1090073.html

12) Peplow, G., <Sir Elton John closes Glastonbur y with histor y-making goodbye-telling fans: ‘I will never forget you’>, SkyNews, 2023.6.26, https://news.sky.com/story/sir-eltonjohn-closes-glastonbury-with-historymaking-goodbye-telling-fans-i-willnever-forget-you-12909593

13) L i l l y, A ., <J o i n i n g a n d L e av i n g the House of Lords>, Institute for Government, 2022.4.1, https://www.instituteforgovernment.org.uk/explainer/joining-and-leaving-houselords

14)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92명의 후천적 귀족들이 귀족 의회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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