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일2024-07-31
티켓다방 성매매 취재로 시작  남한 정착 문제까지 파고들다

티켓다방 성매매 취재로 시작 남한 정착 문제까지 파고들다

  • 저자 : 노경민
  • 발행일 : 2024-07-31

우리에게 탈북민은 가깝고도 먼 존재다. 그들이 말해주는 북한 관련 ‘썰’은 흥미롭게 소비하지만 정작 그들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관심갖는 이는 많지 않다. 중부일보의 <탈북민 리포트>는 탈북민의 ‘정착’에 초점을 맞추고 이들의 현실적인 고민을 담아냈다. 편집자 주

 

“탈북민들이 남한에 와도 살아남기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6년 전 통일부에서 대학생 기자단으로 활동할 때 우연히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대학교 전공 수업 때 북한 관련 수업을 몇 번 들어본 경험은 있었지만, 탈북민들이 처한 고충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그래도 공산주의 치하에서 살 때보단 낫겠지”라고 생각하며 지내왔던 것 같습니다.

 

그 후 시간이 흘러 지난 4월 경기도 포천 취재를 하다 생소한 이야기 하나를 들었습니다. 포천 시내의 티켓다방에서 일하는 종업원 대다수가 탈북민 여성이라는 정보였습니다. 선뜻 믿기 어려웠습니다. 티켓다방이라는 말 자체도 생소해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배경지식 또한 전혀 없었습니다. 모두가 잘 알겠지만, 사회부 기자는 하루하루 정신없는 나날을 보냅니다. 포천 티켓다방은 딱 들어봐도 장기 취재 없이는 다루기 어려운 내용이었습니다. 책상에 가득 쌓인 일감을 보면서 취재에 뛰어들어야 할지 고민이 들기도 했습니다. 논의 끝에 포천 주재 기자와 긴밀하게 협동 취재를 하기로 했습니다.


탈북 여성들, 생계의 최전선으로

 

취재해 보니 지역사회에선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습니다. 우선 티켓다방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수소문해 만났습니다. 생각보다 구체적인 경험담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젊은 세대에겐 생소하겠지만, 티켓다방은 주로 노인층에서 자주 찾는 일반 다방과는 달랐습니다. 가게에서 주문한 차 한 잔이 처음에는 5,000원이지만, 몇 분만 지나면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 구조였습니다. 여기에는 성매매가 그 원인으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과거 티켓다방을 찾아가 봤다는 일부 제보자는 “종업원이 노골적으로 성매매를 유도해 부담스러웠다”고 털어놨습니다. 티켓다방에서 탈북민 종업원을 관리했던 이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봐도 대부분 비슷한 내용이었습니다. 몇몇 탈북 여성들은 보건당국에서 보건증이라고 불리는 건강진단 결과서도 받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취재를 거듭할수록 행정당국이 사실상 단속에 손 놓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다 알고 있는 데다 시내 한복판에서 성행하고 있는 불법 행위를 지자체와 경찰이 암묵적으로 눈감아주고 있다는 의구심이 들기에 충분했습니다.

 

 

포천 지역에서 탈북민 여성들이 티켓다방·유흥주점 등에 내몰리고 있다. 챗GPT에서 ‘도심 밤 골목길을 걸어가는 여성의 뒷모습’이라는 프롬프트를 입력해 생성한 이미지. 달리3(DALL-E-3) 제작 <출처 - 중부일보>

 

 

포천 취재를 마치고 나서 드는 생각은 딱 하나였습니다. ‘왜 이들은 유흥업종에 내몰리고 있을까’. 그 답을 찾는 게 이번 기획 취재의 핵심이었습니다. 6년 전 대학생 기자단으로 활동할 때 들었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자유를 찾아 대한민국에 넘어오기까지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험난한 과정도 모두 이겨냈을 텐데, 남한에 오니 더 큰 시련이 찾아왔다니 믿을 수 없었습니다.


동물보다 못한 취급 받는다는 탈북민들

 

사실 국내에 탈북민 단체는 수없이 많습니다. 최근 ‘오물 풍선’ 사태 때 언론에 등장했던 탈북민 단체도 수두룩합니다. 저희는 아무 단체나 무작정 찾아가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탈북민 단체마다 성향이 많이 갈리고 남한에서 처한 상황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정착에 어려운 탈북민들을 찾는 게 중요했습니다.

 

그러다 한 목사님을 통해 ‘탈북난민인권연합’이라는 탈북민 단체를 소개받게 됐습니다. 국내 언론의 취재에 잘 협조하지 않는다는 김용화 인권연합 회장도 탈북민들이 처한 현실 개선을 위해 취재에 뛰어들었다는 저희의 절실함을 느껴서인지 고민 끝에 취재에 응했습니다. 서울지하철 5호선 굽은다리역 인근에 위치한 이 단체는 조그마한 건물의 지하 1층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타 탈북민 단체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요즘 언론에 등장하는 대북 전단 단체는 북한 주민들의 민주화 인식을 끌어내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반면, 탈북난민인권연합은 남한 정착에 실패한 탈북민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김용화 회장은 한껏 격앙된 반응을 보였습니다. 마치 그동안 참아왔던 울분을 기자에게 토해내는 것 같았습니다. 수십 년간 탈북민들이 처해온 실상을 세세하게 설명했습니다. 기사에 담지 못할 내용도 상당했습니다. 첫 만남을 마치고 “탈북민은 반려동물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한 문장이 계속해서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요즘 TV 예능 프로그램이나 유튜브에서 재치 있는 입담으로 인기를 끄는 탈북민들의 모습이 문득 낯설어졌습니다.

 

한 달 전부터 잡혀 있던 출입처 간담회 일정을 뒤로하고 연합회 행사 일정에 맞춰 또다시 단체를 방문했습니다. 간만의 행사여서 그런지 탈북민마다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그렇게 힘든 남한 생활에도,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반가워서인지 평소보다 한껏 들뜬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행사 참가자들과 솔직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탈북 과정부터 남한 정착 과정, 일상 이야기까지 들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에는 하나 같이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코리안 드림’을 품고 귀순한 대한민국이었지만, 정착 초기부터 무언가 꼬인 느낌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의 인권 탄압에 공포를 느낀 이들은 목숨을 잃을 뻔한 숱한 위기를 거쳐 탈북을 시도했고, 일부만 남한으로 넘어올 수 있었습니다. 지옥 같은 탈북 경험보다 자본주의 사회에 온전히 정착하는 게 더 어렵다는 탈북민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홀로 아들을 남겨두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중년 남성부터 매일 “세상을 떠나자”고 말하는 아들을 지켜보는 엄마까지. 하나같이 정착 초기 과정에서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할 수 있게 돕는 정부의 지원이 부족했다는 하소연이 가득했습니다.

 

지금도 탈북난민인권연합 사무실에는 매일 도움을 청하러 오는 탈북민들로 가득합니다. 취재 과정에서 남한도 북한도 아닌 제3국에서 태어난 한 쌍둥이의 사연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부모는 북한 사람이지만 제3국 출생 자녀여서 탈북민으로 인정받지 못해 한국에서 거주하는 데 큰 제약을 받았습니다. 취재하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습니다. 보통 탈북은 북한에서 남한으로 직접 넘어오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지난 2017년 판문점을 통해 귀순한 오청성 씨는 보기 드문 사례입니다. 보통 북한에서 탈출해 중국이나 동남아에 머물다 남한으로 오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이 때문에 중국, 동남아 등에서 탈북민 자녀들이 국적을 취득하니 나중에 대한민국에 올 땐 한국 사람도 북한 사람도 아닌 ‘이주민’ 취급을 받기 십상입니다. 

 

 

지난 4월 30일 오후 포천시 송우시장에 유흥업소 간판들이 걸려 있는 모습 <출처 - 중부일보 임채운 기자 촬영>

 

 

제도권 밖으로 내몰린 이들, 심각한 문제라고 판단했습니다. 탈북민이 남한에 넘어와도 그들의 자녀가 이주민 취급을 받습니다. 대한민국 사회에 온전히 녹아들지 못해 다시 제3국으로 떠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북한 인권 시민단체 ‘북한인권시민연합’의 도움을 받아 제3국 출생 아이들의 실태를 잘 알게 됐던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를 <탈북민 리포트> 3번째 기사로 다룬 이후 정치권에서도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통일부는 탈북민 정착지원 기본계획에 제3국 출생 자녀에 대한 교육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고, 국회에서는 제도 사각지대에 내몰리지 않도록 북한이탈주민법 개정안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정착의 어려움’에 맞춘 초점, 흔들리지 않고 계속 쓰겠습니다

 

사실 그동안 탈북민들을 다루는 기사는 정말 많았습니다. 다른 기사들과 어떻게 차별점을 둘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저희는 ‘정착’에 초점을 뒀습니다. 숱하게 들려오는 ‘탈북민이 살기 힘들다’는 말에 숨겨진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찾는 데 집중했습니다. 답은 ‘정착의 어려움’에 있었습니다. 직접 만난 탈북민들 각자의 사연을 하나하나 꼼꼼히 짚었고, 북한 관련 여러 기관의 통계를 뒤져가며 벼랑 끝에 내몰린 탈북민들의 현실을 꼬집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이번 <탈북민 리포트>에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취재 과정에서 쌓은 지식과 노하우로 보다 더 진화된 탈북민 기사를 선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탈북민 리포트>는 저희에겐 시작일 뿐입니다.

 

최근 오물 풍선 사태를 부른 국내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행위로 자칫 어렵게 살아가는 탈북민들에게 애꿎은 화살이 돌아갈까 걱정이 듭니다. 그동안 취재를 하면서 정이라도 들었던 것일까요. 그럼에도 무엇보다 이번 <탈북민 리포트> 기획 보도가 탈북민들에게 무조건적인 동정을 보내기 위한 기사가 아닌, 대한민국 정착에 왜 어려움을 겪는지를 모두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헌법상 북한 주민들은 잠재적인 우리 국민이라는 대법원 판례도 있듯, 노인, 장애인뿐만 아니라 탈북민도 사회적 취약계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탈북민 출신인 한 국회의원이 “북한이탈주민의 성공적인 정착은 북한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강력한 무기”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탈북민의 성공적인 정착은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넘어 남한 체제의 우월성, 더 나아가선 통일의 발판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취재 과정에서 많은 영감을 얻은 영화 <믿을 수 있는 사람>에 나오는 탈북민 ‘정미’가 한국 사회 적응에 지친 친구 ‘한영’에게 건넨 대사 소개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사실은 나 이민 준비하고 있어. 우리는 모습만 같지, 한국 사람들한테 외국인보다 못하다. 우리 같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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